[숨&결] 이안 | 시인·<동시마중> 편집위원
까마중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한해살이풀이다. 꽃이 하얗고 열매는 익으면서 먹처럼 새까매진다. 한번 보면 잊히지 않을 만큼 앙증맞게 생겼다. 여름에서 늦가을까지 흰 꽃과 까만 열매를 한 그루에서 잇따라 만날 수 있다. 흰 꽃은 까만 열매로 이동하고, 까만 열매는 다시 흰 꽃으로 이동한다. 이 무한 순환의 시간을 맘속으로 가만가만 걸어보노라면 삶의 방향을 하나만으로 오로지하는 어떤 정신이나 태도 같은 것을 만나게 된다. 간단하고 명료하며 단순하고 소박하기만 한 것.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제주 사계초등학교에서 4일 동안 매일 8시간씩, 2학년 3학년 어린이들에게 동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시를 썼다. 사계초 운동장에선 용머리해안, 형제섬, 산방굴사 등과 함께 이 지역 대표적인 관광지인 산방산이 떡하니 바라다보인다. 교실 앞에 ‘학원지’(근원을 배우는 못)라는 작고 얕은 연못이 있고 이 연못에는 맹꽁이가 산다. 맹꽁이와 말을 주고받을 수 있다던 2학년 여자아이는 전학을 갔다고 했다. 3학년이 되어서도 같은 주장을 하는지 이번에 만나서 꼭 물어보고 싶었는데.
연못가 돌 사이엔 미니 마거리트가 약간 졸하다 싶을 정도의 체구로 보기 좋게 피어 있다. 미니 마거리트 꽃말은 ‘진실한 사랑’ ‘자유’ ‘예언’이다. 어린이들의 배움터에 어울린다. 꽃은 어째서 영원의 돌이나 바위에 기대길 좋아하고 돌이나 바위는 어째서 순간의 꽃을 자기 앞에 두길 좋아하는지. 이런 마음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건지.
지난해엔 지나치고 말았는데 올해는 바짝 들여다보게 된 것이 이 학교 교가다. 윤석중이 썼다.
“굴속에 있는 절 산방굴사/ 언제나 정한 물 떨어지네/ 물방울 바윗돌 뚫고 말듯/ 굳은 뜻 세우며 길 트이네// 나란히 묻은 섬 형제섬은/ 바람도 파도도 같이 막네/ 물속의 저 바위 본을 받아/ 나란히 우리도 서로 돕자”(전문)
주변 자연물에서 사람이 갈 길을 이끌어내는 전형적인 방식의 교가이지만 여기에는 언제까지나 변치 않을 사람살이의 이치와 방향이 새겨져 있다. 정한 물방울의 굳은 뜻이 바윗돌을 뚫고 말듯이 떨어지는 그 힘으로 길은 트이며, 바람과 파도를 맞는 게 아니라 막는 거라고 어떻게든 역전시킬 때 조금이라도 보람 있는 말과 글자가 된다는 간곡한 마음이라니. ‘바늘로 우물 파기’(오르한 파무크)란 말과 다를 게 없다.
이번에 3학년 어린이가 쓴 시에서도 이런 정신이나 태도가 발견된다.
“토마토 씨앗을 심었다. 예쁜 말도 해주고 물도 많이 주었는데 나지 않았다. 다음 날 새싹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격려 말을 해 주었다. 새싹이 많이 자라고 토마토가 열렸다. 키는 그대론데 토마토는 열렸다. 키가 작든 말든 토마토는 토마토다.”(김희율, ‘토마토’ 전문)
첫 문장의 시간에서부터 마지막 문장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이 어린이가 토마토에 쏟은 마음의 과정이 정한 물방울이 마침내 바위를 뚫어낸 과정, 길이 트이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생명과 사람과 문장의 길이 산문시 안에 온전히 통합되었다.
‘까마중’이란 제목으로 쓴 시를 칠판에 적었다. 두곳에 동그라미를 치고 거기 들어갈 말을 맞혀보자고 했다. 다음 동그라미 안에 들어갈 말은 무엇일까요?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맞혀보시기 바란다.
“하얀 꽃 까만 열매/ ○이 까매요.// 까만 열매 하얀 꽃/ ○이 하얘요.”(이안, ‘까마중’ 전문)
이 시에는 이런 주를 붙여놓았다. “까마중 꽃말: 동심, 단 하나의 진실.” 문제가 나가자마자 어린이들이 손을 번쩍번쩍 들었다. 입, 손, 속, 맘, 똥, 눈, 품, 몸, 색, 말…. 조금씩 근사한 말이었지만 꼭 그 말은 아니어서 아쉬운 참에 어디선가 “○?”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그곳을 가리키며 정답!을 외치자 어린이들의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정답을 맞힌 사람은 담임 선생님이었다. 선생님 얼굴이 열살 어린이처럼 발갛게 상기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