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패권 이후의 세계’는 많은 기회를 제공하기도 할 것이다. 전쟁·제재 속에서 유가와 함께 각종 물가가 오르고 인플레가 심해지면 다수의 구매력이 위축되는데, 그 빈곤화의 정치적 결과는 다양할 수 있다. 가난해진 대중은 오른쪽뿐만 아니라 왼쪽으로도 급진화될 수 있다.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나는 중국사를 공부하면서 한가지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다. 중국 지배자들은 늘 ‘천하통일’을 이상으로 내세우지만, 사후적으로 보면 역사의 진보가 가장 빨랐던 시기는 바로 천하가 통일되지 않았던 시대들이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유가나 도가, 법가 등이 형성된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221)는 분열의 시대였지만, 아마도 중국 역사상 가장 풍부한 유산을 남긴 시대이기도 했다. 중국 고전 사상의 형성뿐만 아니라 진나라에서 상앙(기원전 390~338)의 개혁이 만든 세계 최초의 능력주의 관료국가도 피비린내 나는 전란시대의 유의미한 사회적 실험이었을 것이다.
이 시대와 비교가 가능한 시기는 송나라(960~1279)와 요나라(916~1125), 금나라(1115~1234)처럼 한족이 아닌 ‘오랑캐’들이 세운 왕조들이 공존한 10~13세기였다. 이웃과의 경쟁 속에서 송나라에서는 수력방직기나 화약 사용 등으로 기술이 발전하고 지폐·어음 사용을 바탕으로 상업경제가 번성했을 뿐만 아니라 성리학부터 선불교까지 다양한 사상들이 경합을 벌이기도 했다. 유럽보다 반천년 먼저 송나라에서 ‘근세’(early modernity)가 출현한 것이다. 반대로 천하통일을 이룬 명·청 시기에는 역사 발전이 훨씬 더 느렸다.
패권이 약화하거나 교체되는 시기는 근현대 세계사에도 있었다. 1870년대 초반 독일의 부상 이후로 비록 영국의 세계패권은 기본적으로 유지되면서도 신흥 산업대국인 미국, 독일과의 경쟁 속에서 날이 갈수록 약화했다. 하지만 1914년까지 지속했던 이 패권국가 쇠퇴의 시기는 아마도 세계사에서 기술발전이 가장 빨랐던 시대이자, 노동운동이 대대적으로 발전한 시대이기도 했다. 바로 이 시기에 마르크스주의부터 니체 사상까지 오늘날 우리 생각의 지형을 형성하는 사상의 흐름이 만들어졌다. 뚜렷한 패권국가가 없었던 1914~1945년 사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패권이 넘어가는 시기는 세계사에서 가장 담대한 사회적 실험들이 가능했던 시대였다. 1917년 이후 소련에서 대안적 근대의 모델이 뿌리를 내렸고, 중국 공산당이 역사상 최초로 농민 기반의 사회혁명을 시도했다.
1945년 이후 미국 패권의 역사적 궤도는 단순하지 않았다. 1940년대 후반 절정에 이르렀던 미국의 패권은, 1970년대 초반에 이르러 서독과 일본의 부상과 미국 제조업의 상대적 후퇴, 그리고 베트남에서의 패배 등으로 다소 위축됐다. 그러다가 1989~91년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인터넷의 상업화와 미국이 주도한 새로운 디지털경제의 출범은, 쇠퇴 일로에 있던 미국의 패권에 돌연히 새로운 ‘힘’을 불어넣었다. 소련은 ‘이미’ 망했고, 중국은 ‘아직’ 본원축적과 공업경제의 압축성장 시대를 경유하던 1991~2008년 사이 미국 패권은 1950~60년대에 버금가는 ‘제2의 황금기’를 누렸다.
그러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모델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에 비하면, 이미 디지털경제의 영역에까지 매우 성공적으로 진출한 중국식 관료자본주의는 비교적 더 강한 생명력을 보였다. 이라크 전쟁에서의 사실상의 패배 등 악재가 겹친 미국이 약해진 틈을 타, 중국과의 본격적 유착에 들어간 러시아는 2008년에 친미 성향 이웃 나라인 조지아를 침공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패권은 점차 경향적으로 약화해갔다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상황 전개를 배경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도 가속화됐다.
최근에 벌어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역시, 미국 헤게모니 약화 속에서만 가능할 수 있었다. 이 침략 자체는 세계사를 바꿀 만한 일은 아니다. 그렇게 될 리도 만무하지만, 설령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체를 점령해 자국 내로 편입시킨다 해도 세계경제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몫은 여전히 2~3% 안팎일 것이다. 침략 그 자체보다 세계사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이 침략을 계기로 분명해진 세계의 ‘양분’이다. 구미권과 한·일 양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은 러시아에 경제제재를 가했지만, 제재를 가한 나라들의 인구는 세계 총인구의 14%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중국은 물론, 인도나 터키, 사우디, 브라질, 남아공 등 세계 각 지역 강국들은 러시아 제재에 불참함으로써 미국의 리더십에 사실상 도전장을 던졌다. 미국과 유럽의 은행에서 러시아 자산이 갑자기 동결된 것을 본 중국은, 자국 화폐인 위안화의 국제결제 비율을 높이는 등 자국 중심의 국제금융시스템 구축에 앞으로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시스템이 구축돼 중국이 최고 순위의 미국 금융제재를 견뎌낼 정도가 된다면, 우리는 그때부터 미국 패권 이후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이미 그 조감도가 어느 정도 그려지는 ‘미국 패권 이후의 세계’는 안정되거나 평화롭지 못할 것이다. 핵 사용 위험은 과거의 패권교체기였던 제1, 2차 세계대전과 같은 참사가 벌어질 가능성을 낮추지만, 우크라이나 침략처럼, 지역 강자들이 주변에서 벌이는 크고 작은 대리전들은 종종 발생할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대신해서 국가 주도 산업정책이 새로운 ‘정상’이 되고 서로 경쟁하는 각국의 집중적인 연구·개발 투자로 기술발전은 빨라지겠지만, 열강의 각축은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피해자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한데 이와 동시에 위태로워 보이기만 하는 ‘미국 패권 이후의 세계’는 많은 기회를 제공하기도 할 것이다. 전쟁·제재 속에서 유가와 함께 각종 물가가 오르고 인플레가 심해지면 다수의 구매력이 위축되는데, 그 빈곤화의 정치적 결과는 다양할 수 있다. 가난해진 대중은 오른쪽뿐만 아니라 왼쪽으로도 급진화될 수 있다. 최근에 인기가 오른 프랑스의 극우 정객인 르펜뿐만 아니라 대선에서 승리한 칠레의 전형적 ‘밀레니얼 좌파’ 보리치도 새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서방과 중국 사이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이루어지는 만큼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각국에서 제한적으로나마 재공업화가 요구될 터인데, 산업 노동자들의 계층이 다시 커지는 만큼 좌파의 대중적 기반도 튼튼해질 수 있다. 고전적 자유주의나 ‘포스트’ 사상의 위축 내지 퇴출로 생기는 이념 시장의 ‘틈새’를, 극우민족주의뿐만 아니라 새롭고 혁신적인 마르크스주의도 메울 수 있다. 일국 패권 이후의, 강국 경합의 세계가 동시에 계급투쟁과 기후정의를 위한 투쟁의 세계가 될 것을,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