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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일의 기쁨과 슬픔 / 유미향

등록 2022-05-04 18:11수정 2022-05-05 17:20

일의 슬픔보다 기쁨을 더 크게 느끼고 싶다.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돌봄 아이들을 차별하는 교육관료들에게 큰 소리로 읽어주고 싶다. ”아이들과 젊은이를 키우지 못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아니 자멸적이다.”

2020년 11월6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돌봄교실 수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11월6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돌봄교실 수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유미향 | 초등돌봄전담사

장류진의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처럼, 내 직장 생활에도 슬픔과 기쁨이 함께 있다.

일의 슬픔은 신분에서 온다. 비정규직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차별’이다. 4시간30분 시간제 근로자였던 나는 초등돌봄전담사로 일하며 온갖 차별을 받았다. 첫번째 차별은 압축노동. 돌봄 운영시간과 근로시간이 같아서 짧은 시간 안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하교시간이 들쑥날쑥한 아이들을 챙기며 온갖 행정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두번째 차별은 30분 휴게시간을 쓸 수 없었다는 것. 퇴근할 때까지 아이들이 남아 있으니 언제 휴게시간을 쓸 수 있단 말인가? 하루에 30분, 별거 아닌 것 같지만 1년 2년 쌓이면 엄청난 시간이다. 교통비, 식비, 근속수당, 명절수당 역시 시간제라 비례로 받아야 했다. “시간제 근로자는 출근할 때 버스에 한 발만 올리고 타고, 밥은 반 공기만 먹고 일하라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무엇보다 더 나쁜 것은 나의 차별이 아이들의 차별로 이어진다는 점이었다. 코로나19를 물리치기 위해서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책상과 가림막도 소독한 뒤 쾌적한 환경에서 아이들을 맞이하고 싶었다. 하지만 4교시까지만 수업이 있는 날은 낮 12시30분에 출근하는 나보다 아이들이 먼저 와서 기다린다. 오전에 배달된 간식은 냉장고가 아닌 신발장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청소 또한 비는 시간이 없으니 아이들이 있을 때 할 수밖에 없다. 반면 8시간 근무자들은 오전 시간에 행정업무를 처리하고, 쾌적한 교실에서 아이들을 맞이하며, 냉장고에 넣어뒀던 신선한 간식을 줄 수 있다.

코로나19는 일의 슬픔을 더 크게 만들었다. 2020년 코로나19가 터지자 정교사들은 재택근무를 하되 학교에서는 ‘긴급돌봄’을 시작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해도 비정규직 돌봄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돌보러 매일 출근해야 했다. ‘돌봄’의 중요성이 더 커졌지만, 개학 뒤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돌봄교실 지자체 이관’과 ‘고용승계는 없다’라는 말이었다.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될 수는 없었다. 2020년 5월부터 ‘돌봄교실 지자체 이관’을 막기 위해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힘찬 투쟁을 시작했다. 2020년 11월6일 세종시 교육부 청사 앞에서 총파업을 선언했고, 2021년 8월4일 유은혜 교육부장관은 돌봄교실 개선안을 발표했다. 우여곡절 끝에 8개 시·도가 8시간 전일제에 합의했지만, 경기도교육청은 8시간 전일제 불가를 고수했다. 우리는 2021년 11월4일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8시간 전일제를 위해 무기한 파업을 선언하고 삭발과 단식에 나섰다. 저녁에는 촛불을 들었다. 그 결과 4시간은 6시간, 6시간은 8시간으로 근무시간이 늘었지만, 임금 문제는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일의 기쁨은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에서 얻는다. 초등학교 1·2학년은 말썽꾸러기도 있지만, 대부분 착하고 솔직하다. 태권도 검은 띠를 땄다고 자랑하는 아이,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가 사랑스럽다. 엄마 아빠가 부부싸움 한 비밀까지 말해주는 순수한 아이도 있다.

돌봄교실에서는 공부하고, 책도 읽고, 더하기 빼기도 가르치지만,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놀이 밥’을 할 때다.

“얘들아~ 놀이 밥 먹자.”

“선생님, 놀이 밥이 뭐예요?”

“너희들은 매일매일 밥을 먹지. 밥을 먹어야 키가 크고 몸이 크는 것처럼 어린이들은 놀이도 밥처럼 매일 먹어야 마음이 커지는 거야. 마음이 크면 행복해지지. 선생님이 매일 놀이 밥 먹여줄게.”

“네~ 좋아요.”

‘놀이 밥’ 시간에 아이들은 알아서 논다. 간섭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방법으로 마음껏 놀고 쉼 없이 웃는다. 놀이 밥 먹는 시간을 아이들은 너무 좋아하고, 행복이 넘치는 시간이 된다.

아이들은 받은 만큼 사랑을 되돌려준다. 내가 ‘놀이 밥’을 선물하니 ‘뿌애용’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아이들과 내가 쓰는 비밀 용어인 ‘뿌애용’은 ‘사랑해요’와 비슷한 뜻인데, 사슴 같은 눈망울을 가진 수진이 입에서―마음에서 사랑이 넘치던 날― 처음 세상에 나온 뒤 지금은 자연스럽게 서로 쓴다.

일의 슬픔보다 기쁨을 더 크게 느끼고 싶다.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돌봄 아이들을 차별하는 교육관료들에게 브래디 미카코의 <아이들의 계급투쟁>에 나오는 글을 큰 소리로 읽어주고 싶다.

“아이들과 젊은이를 키우지 못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아니 자멸적이다.”(69쪽)

그렇다. 선생님들이 기뻐야 아이들도 함께 기쁠 수 있다.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치열한 투쟁도 끝내고 싶다. 나는 돌봄 아이들과 차별 없는 세상에서 오늘도 “뿌애용”을 외치며 살고 싶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연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응모작입니다. <한겨레>는 해마다 응모작 일부를 게재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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