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확, 도망칠까? 고민하면서 그 친구들을 봤지.”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다음 대사를 기다렸다. 길연이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나를 보던 그 눈빛들을 잊을 수가 없어. ‘나 공부해야 돼. 우리 공부할 공간이 필요해’라고 말하는 아주 간절한 눈빛들….”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지하철 탑승 시위를 마친 후 삭발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은전 | 작가·인권 동물권 기록활동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을 요구하며 매일 아침 8시 삭발 투쟁을 한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다. 오늘(5월9일)의 삭발자는 인천 민들레장애인야학 교장 박길연이다. 나는 지난해 그를 인터뷰했었다. 길연은 신비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는데, 그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야기는 그의 심장에 박힌 어떤 눈빛들에 관한 것이다.
1990년 스물일곱살의 길연에게 갑자기 류머티즘 관절염이 찾아왔다. 온몸의 관절이 빠르게 손상됐고 그는 영구적 장애를 갖게 되었다. 어느 날 휠체어를 타고 집 밖으로 나갔던 길연은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에 상처받고 돌아와 몇시간을 울고는 다시는 나가지 않았다. 길연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건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뒤였다. 2006년이었고 활동지원서비스를 요구하는 장애인들의 투쟁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길연은 홀린 듯이 그 투쟁에 빨려들어갔다. 16년간 유폐되었던 삶이 자신을 그렇게 이끈 것 같다고 길연이 말했다.
그에겐 젊은 친구 몇 명이 생겼다. 뇌성마비 장애인들이었다. 그들과 어울려 놀던 어느 날 길연은 그중 20대 청년이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과 그들 모두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길연은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두어번 모였을 때 그가 살던 건물의 관리소장이 찾아왔다. “박길연씨 혼자일 때는 봐줬지만 장애인들이 떼로 드나들면 집을 빼줘야 합니다.” 하는 수 없이 조그마한 공간이라도 구해보려고 부동산을 찾아 헤매던 길연은 장애인을 향한 노골적 괄시를 겪으며 친구들이 살아온 척박한 현실을 배워갔다.
간신히 공간을 구하자 이젠 월세가 문제였다. 친구들이 말했다. 껌을 팔면 돼. 길연은 귀를 의심했다. 알고 보니 그들 대부분 노점을 해본 경험이 있었다. “오 마이 갓! 돌아가신 아버지가 봤으면 피눈물을 흘렸을 거야.” 현재의 길연이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날의 길연은 속마음을 전혀 내색하지 못했다. 그것이 친구들이 살아온 삶이었고 무엇보다 그들이 몹시 진지했기 때문이다. 까짓것, 좀 쪽팔리면 어때. 길연은 마음을 다잡고 사탕 몇 봉지를 사서 팔기 좋게 포장한 뒤 말했다. 자, 이제 어디로 가면 돼? 경험 많은 친구들이 대답했다. 임학역으로 가자.
가는 길에 길연은 진열대로 쓸 박스를 구해 무릎 위에 얹었다. 그런데 인도가 울퉁불퉁한 탓에 불안하게 덜그럭거리던 박스는 결국 바닥에 굴러떨어지고 말았고, 그걸 주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증장애인들을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왜 나와서 이 고생을 하느냐며 혀를 끌끌 찼다. “하여간 마지막까지 온갖 수모를 다 겪었지.” 길연이 만담꾼처럼 생생하게 그날을 재연했기 때문에 나는 입술을 깨물고 웃음을 참았다. 가까스로 임학역에 도착한 길연은 사탕을 보기 좋게 진열한 뒤 이제부턴 친구들이 알아서 하겠거니, 손을 탁탁 털었다.
순간 길연은 주변이 고요해짐을 느꼈다. 불길함이 엄습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아서 조심스럽게 얼굴을 돌린 길연은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열개의 눈동자를 보고 말았다. 그 눈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소리를 질러야 사람들이 알지!’ 당황한 길연도 눈으로 말했다. ‘내가? 왜? 너희들이 하자고 한 거잖아! 많이 해봤다며!’ 하지만 길연은 그곳에 언어장애가 없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사실도 똑똑히 보고 말았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현재의 길연이 연극배우처럼 과장되게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여긴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확, 도망칠까? 고민하면서 그 친구들을 봤지.”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다음 대사를 기다렸다. 길연이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나를 보던 그 눈빛들을 잊을 수가 없어. ‘나 공부해야 돼. 우리 공부할 공간이 필요해’라고 말하는 아주 간절한 눈빛들….”
ㄱ, ㄴ을 가르치기 위해 때론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필요하다. 그 인생에 휘말려들 준비가 되었는가. 길연은 눈 딱 감고 외치기 시작했다. “장애인 교육권 보장을 위해 모금하고 있습니다. 이 껌 씹으면 마음 변한 애인도 딱 달라붙어요!” 더러는 술 취한 남자들이 “병신 육갑하네” 하면서 지나갔지만 더는 두렵지 않았다고 길연이 말했다. 그 장면을 생각하면 어김없이 조금 울게 된다. 이런 이야기들은 번번이 나를 구원한다. 차별받는 누군가의 눈동자가 심장에 박힌 이들이 오늘도 머리를 밀고 밥을 굶고 지하철 바닥을 기어간다. 매일 아침 8시, 목이 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