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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비틀스도 몰랐던 세금의 의미

등록 2022-05-08 18:07수정 2022-05-09 02:38

비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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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김공회 |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

영국의 4인조 록밴드 비틀스의 일곱번째 스튜디오 앨범 <리볼버>는 여러모로 기념비적이다. 1966년 8월에 발매된 이 앨범은 ‘엘리너 릭비’, ‘옐로 서브마린’ 같은 히트곡을 수록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곡의 구성이나 연주 면에서 다양한 음악적 실험들을 담고 있다. 평론가들은, 이를 통해 네명의 청년이 종전의 아이돌밴드 이미지를 깨고 진정한 ‘아티스트’로의 길로 들어섰다고 평하기도 한다.

비틀스는 이 앨범을 기점으로 사회 이슈에 관한 발언을 본격화했다. 앨범의 첫번째 수록곡 ‘택스맨’(Taxman)이 그렇다. 여기서 비틀스는 소득의 95%나 떼어가는 과세당국의 ‘만행’을 고발하고 있는데, 곡을 만든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은 한 인터뷰에서 당시 노동당 정부의 수장 해럴드 윌슨을 로빈 후드 이야기에 나오는 노팅엄 영주에 빗대기도 했다.

흔히 정치적으로 ‘진보’로 여겨지는 비틀스 멤버가 누진적 소득세제에 ‘저주’에 가까운 말을 쏟아부었다는 것은 당혹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소득세는 1960년대에서 보자면 비교적 낯선 세제였을 것이다. 소득세가 영구적인 세제로 자리매김한 것은 기껏해야 20세기 초였다. 1913년 미국에서 소득세제가 도입되었을 때 전체 가구의 2%만이 납세 의무를 졌다고 하니, 노동계급 출신인 비틀스 멤버들이 자신들의 소득세 납부 상황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놀랐을지 짐작이 간다.

영국과 미국에서 최고 소득세율이 90% 넘게 책정된 것은 전쟁 때문이었다. 2차 세계대전 발발로 급증한 재정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전쟁통에 저런 세율의 적용을 받았겠는가? 바로 ‘전쟁특수’를 누린 일부 재벌과 군수산업 관련자들이다. 누군가는 피와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킬 때 누군가는 바로 그 전쟁에서 돈을 번다는 건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저런 살인적인 세율도 사회적으로 어렵지 않게 용인됐을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어땠을까? 우선 정부의 재정수요는 여전했다. 전쟁의 참상을 치유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했을 테니 말이다. 더구나 영국을 필두로 ‘복지국가’가 선언되면서, 국가 재정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 대목에서 소득세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소득세를 매기려면 각 개인이 거두는 소득액을 정부가 꽤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소득세제가 영구화됐다는 것은 정부가 그런 능력을 확보했음을 의미하는데, 1960년대는 과학기술, 특히 컴퓨터 기술의 도입으로 정부행정의 질이 크게 도약한 시기이기도 하다. 미국 케네디 정부는 91%였던 소득세 최고세율을 1964년부터 70%대로 낮추는데, 이는 국제 조세경쟁 격화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반응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정부행정의 효율성 증대로 과세 기반을 넓힐 수 있다는 자신감 없이는 불가능했을 ‘모험’이기도 하다.

이상의 소득세제 내력은 새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에 좋은 시사점을 준다. 코로나19 사태는 흔히 전쟁에 비유되곤 했는데, 그 전쟁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그랬듯 정부의 능력은 전쟁이 끝난 뒤에 더 요구되는 것 같다. 전쟁의 참상 수습을 시장과 민간에만 맡겨두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건 없을 것이다. 지금은 기왕 전쟁으로 주저앉은 마당이니 그간 미뤄둔 제도개혁을 감행하기에도 적절한 시점인데, 이 부문에서도 정부가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물론 여기엔 돈이 많이 든다. 지난 2년간 ‘전쟁’ 중에는 돈 걷는 일을 나중으로 미뤄놓는 게 현명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돈을 걷어야 한다. 윤석열 당선자는 후보 시절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이들을 과감히 지원하겠다는 약속으로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곧 취임을 앞둔 지금, 더 큰 책임감을 보여야 한다. 코로나19 기간에 각별히 이득을 본 이들,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은 이들에게 사회복구에 적극 동참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그 하나의 방편이며, 소득세제는 그 좋은 수단이다. 현재 과세당국의 소득파악체계는 세금을 걷는 데는 물론 소득이 부족한 이들에게 각종 사회적 수당을 나눠주는 데도 쓰이고 있다.

비틀스의 한 멤버가 술회했듯 ‘택스맨’에서 그들이 그토록 분노했던 건 영국 정부가 자기들에게서 앗아간 돈을 베트남에 폭탄 퍼붓는 데 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정부가 돈을 잘만 썼다면 ‘택스맨’의 내용도 바뀌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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