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폐지 저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 10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국회 앞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철회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세상읽기]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십대 엄마들이 너무 많아 문제야!”
3년 전 아침 밥상에서 아들이 불쑥 내뱉은 말이었다. 뉴스를 봤거나 학교에서 어떤 교육이 있었던 것 같았다. 엉겁결에 내 입에서 퉁명스러운 반응이 나왔다.
“왜 십대 엄마들만 많을까? 십대 아빠들은 다 어디 가고.”
열네살 아들은 멋쩍어했고, 마흔여덟살 나는 찜찜했다. 섬세하게 다가갔어야 했는데, 임신이라는 사건만을 바라보았고, 생각은 사건을 수습하는 방식으로 흘러 숨어버린 10대 아빠와 그들 부모에게 닿았다. 나는 아들이 소녀들에게 걸었던 올무를 소년들에게로 넘기고 만 것이다.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갈까? 불거진 사건 속에서 일상을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애쓰지만, 그보다 더 균일하게 일상을 버텨내는 바탕은 ‘관계’라고 생각한다. 내가 맺고 있는 관계의 질 속에서 사고는 사건으로 견딜 만해지고 사건은 세상살이 속 그러려니 하는 일상으로 잠잠해지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는 터브먼 하우스라는 홈리스 청소년 부모들을 위한 집이 있다. 19년 전에 ‘이제 마을이 아이들을 지킨다’는 모토로 고등학교 교사였던 브리짓 알렉산더와 블라이스 레인스 부부
(婦婦
)가 시작했고, 셸터(보호소)가 아니라 홈(가정)이라고 내세웠다. 아이를 낳기로 한 청소년 부모들이 집과 음식, 육아용품을 지원받으며 아기 돌보기를 배우고 정신적인 돌봄도 받으며,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몇몇은 대학에도 간다. 그들은 이곳에서 살 수 있는 2년 동안 월세를 마련해 자립하도록 3천달러를 저축해야 한다. 터브먼 하우스에는 부모교육, 정신건강 관리, 경제교육, 예술교육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있다. 청소년 부모들은 예술 활동뿐 아니라 원할 경우 터브먼 하우스와 연계된 아동미술센터에서 월급을 받으며 일한다. 지역 행정에서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활동도 하고 있다. 이곳에 살던 청소년 가운데 80%가 고등학교 학력 인증을 받았고, 그중 반은 대학에 진학했다. 75%는 빚을 갚고 신용도를 회복한 뒤 떠났고, 93%는 홈리스 생활로 돌아가지 않았다.
터브먼 하우스는 십대 임신을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관계의 확장으로 맞이한다. 그러하기에 대부분의 시설이 십대 임산부만 거주하도록 하는 것과는 다른 출발을 한 것이다. 아기에게 가장 안온할 조건을 갖춰주고자 아기가 맺고 있는 관계가 안정되도록, 미숙한 부모의 마음과 보살핌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집중한다.
많은 시민단체의 활동들은 마치 개울이 강으로 흘러들어 큰 줄기를 이루듯 행정에 변화를 만들어왔다. 터브먼 하우스와 같은 활동을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에서 받아안는다면 어떤 부처나 부서에서 할 수 있을까? 청소년과에서 해야 할까? 교육부인가? 보건복지부일까? 아니면 청년취업을 관장하는 고용노동부일까?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경제학과 공공정책학 교수인 폴 콜리어는 <자본주의의 미래>라는 책에서 사회적 모성주의를 제안한다. 지금까지 가부장 행세를 해온 국가의 실패를 인정하고 불평등과 불안에 잠식된 사회를 안정시키려면, 가족이 안녕하도록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영국의 한 쇠락한 지역의 행정 활동을 소개했다.
고립감, 수치심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위해 상가를 빌려 카페를 차리고 협동조합을 꾸려 운영하도록 했다. 그 결과 자존감도 살아나고 친구들이 생기면서 병원 신세 지는 일도 줄고 특히 자녀들의 학교 성적까지 높아졌다. 카페 수익은 손익분기점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 프로젝트는 상급기관에 의해 폐기됐다. 보건 업무가 아니라 사회복지서비스이고 어쩌면 교육부 예산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복합적으로 좋은 결과가 나왔기에 사라진 공공돌봄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상황이다. 여러 사안이 뒤엉켜 불거지는 21세기 문제들이 20세기 교과서처럼 과목별로 나뉜 행정부처가 서로 영역을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고통의 숨통을 조이기까지 한다. 활동가들은 ‘칸막이 행정’이라고 부르던데, 나 몰라라 부유하는 행정 문제들을 처리하려면 또 다른 부처인 ‘나머지부’를 만들어야 할 지경이다.
새 행정부가 출범했다. 이제 ‘관계’를 보살피는 행정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부처 간, 업무 간 조율이 강조되는 행정 말이다. 그동안 이를 담당해야 했던 여성가족부를 제대로 일하도록 더 강력히 압박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관계 속에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