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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후쿠오카에서 보내는 편지

등록 2022-05-18 18:07수정 2022-05-19 02:37

2022년 5월 인천발 후쿠오카행 비행기에서 찍은 사진. 쓰시마 섬을 지나고 있다. 사진 이길보라
2022년 5월 인천발 후쿠오카행 비행기에서 찍은 사진. 쓰시마 섬을 지나고 있다. 사진 이길보라

[숨&결] 이길보라 | 영화감독·작가

인천에서 일본 후쿠오카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혹은 후쿠오카에서 한국으로 돌아갈 때마다 새삼 놀라곤 해. “너무 가깝잖아?”라는 말이 절로 나와. 사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이전에는 당일치기로도 일본에 다녀오곤 했잖아. 나는 인천공항 가는 길에 일본행 항공권을 사본 적도 있어. 이제는 먼 옛날 이야기 같네.

인천에서 후쿠오카까지는 1시간20분이 걸려. 이륙하고 너의 고향인 부산을 거쳐 쓰시마섬을 지나면 비행기가 방향을 바꿔. 착륙을 준비한다는 뜻이지. 창밖 구경을 하다가 커피 한모금 들이켜면 도착인 거야. 이렇게나 가까운데 정말 왜 이렇게 멀어졌을까? 팬데믹 이후 두 나라를 오갈 때마다 드는 생각이야.

너도 알다시피 나는 서면으로 혼자 혼인신고를 했잖아.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일본이 한국과 상호 무비자 입국을 중단하고 한국인 전면 입국금지 조치를 실시하면서 말 그대로 국경이 닫혔지. 나는 일본 국적 파트너와 생이별을 하게 되었고. 매일같이 일본행 항공권을 검색하면서 언제쯤 국경이 열릴지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나를 걱정해주던 네가 생각나. 그러다 잠깐 일본인·영주자의 배우자에 한해 신규 입국이 가능할 때였어. 나는 모든 걸 뒤로하고 국제우편으로 서류를 받아 혼인신고를 하고 비자를 발급받았지. 그땐 정말 무사히 입국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어. 후쿠오카로 향하는 항공편도 없어서 오사카공항으로 가야 했지. 파트너와 그의 가족들이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후쿠오카에서 10시간 넘게 운전해서 왔다가 다시 10시간을 운전해서 돌아갔던 일, 기억나?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엄청난 이야기야.

이번에 한국에 갔다가 후쿠오카로 돌아왔는데 일본어 교실 선생님으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어. 벚꽃은 졌지만 진달래, 붓꽃, 수국이 한창이라고, 곧 만나자고 말이야. 얼마나 다정하니. 수업에 가니까 필리핀 출신 수강생이 보고 싶었다며 반갑게 팔짱을 꼈어. 매일같이 가는 빵집에도 갔지. “다녀왔습니다” 하고 우렁차게 일본말로 소리치니까 사장님과 직원이 어색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 하고 한국말로 인사하더라. 그 집 빵은 여전히 최고야.

지난 주말에는 한 미술관에서 영화 상영 및 토크 행사도 했어. 80석 객석이 꽉 찼더라고.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어떤 표정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날씨도 좋았고 반응도 좋았던 것 같아 다행이야.

아, 수박 할아버지도 만났어. 같은 동네에 사는 눈썹이 짙은 할아버지 말이야. 이전에 바다에서 쓰레기를 줍다가 오해가 생겨 크게 싸운 일이 있었잖아. 그때 이후로 할아버지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소리 지르지 않는대. 대신 불미스러운 상황이 생기면 경찰에게 바로 전화한대. 한국 다녀왔느냐며 마늘과 양파를 수확했으니 가져가라고 하시더라고. 마늘종도 주셨는데 일본에서도 이걸 먹나봐. 나는 한국식으로 고추장을 넣어 무칠 생각이야.

옆집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분명 걸음마를 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한국에 다녀오니까 금세 뛰어다니는 아이가 되었지 뭐야. 가끔은 말도 해. 한국어를 조금씩 가르쳐볼 생각이야. 아이가 예쁘다고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 아이를 보면서는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 있어. 아이가 자라는 걸 지켜보는 건 정말이지 신기한 일이야.

국경은 여전히 닫혀 있어. 좋은 소식은, 이달 중에 김포-하네다 노선이 재개되고 6월부터는 일본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문을 열 거래. 그럼 너도 후쿠오카로 오는 비행기를 탈 수 있겠지. 어쩌면 생각하게 될 거야. ‘이렇게나 가깝다고?’ 어서 너도 그 감각을 느꼈으면 좋겠어. 국경을 넘는 그 감각 말이야. 오래 기다렸어. 매일같이 보는 그 바다를 보여주고 싶어. 바다를 따라 걸으면 온 동네 주민들을 만날 수 있어. 그 길을 함께 걸으며 이곳의 친구들을 소개하고 싶어. 그리고 우린 생각하겠지. 국경이란 무엇인지, 그곳과 이곳은 얼마나 가까운지에 관해 말이야.

2022년 5월 일본 후쿠오카 이마주쿠 해안. 사진 이길보라
2022년 5월 일본 후쿠오카 이마주쿠 해안. 사진 이길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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