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지방선거가 치러진 1일 강원도 한 마을의 주민들이 투표소로 이동하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가 지원한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숨&결] 양창모 | 강원도의 왕진의사
“오늘 여기 온 아이들 대부분은 태어난 곳이 여기가 아니에요. 엄마들은 만삭의 몸으로 차로 한시간 넘게 운전해서 춘천까지 가야 해요. 여긴 산부인과가 없으니까.”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분과별로 병원 하나씩은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그나마 있던 병원도 없어지는 판국이에요.”
강원도 ○○군 어느 작은 책방에서 북콘서트를 하던 날. 그 자리에 온 독자들이 한 얘기다. 지방이 소멸하기 전에 먼저 소멸하는 게 지방의 의료다. 그들의 삶이 내 책 속 이야기보다 훨씬 더 한국 의료의 문제를 잘 가리키고 있었다. 북콘서트에 온 이들의 마지막 질문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선생님은 월급이 얼마면 여기에 오시겠어요?” 얼마나 다급했으면 그런 질문을 다짜고짜 했을까. 우물쭈물 대답을 얼버무리면서도 나는 예감했다. 세상은 무대 위에 서서 답하는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질문하는 저분들에 의해서 바뀔 거라는 것을. 그들의 질문이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거라는 것을.
몇달 뒤 나는 도의원들, 즉 법(조례)을 만드는 사람들과 간담회를 했다. ○○군 독자들의 질문에 들어 있는 고통과 절박함이 만들어준 길을 따라간 결과였다. 법이란 없던 것을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회라고 생각해 열심히 발표를 준비해 갔다. 맨 먼저 ○○군에서 만난 독자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군 고등학생이 서울 강남 아이들만큼 성적은 안 되더라도 지역의사 할당제를 통해 공공 의대에 입학할 수 있어야 한다. 의사 수련을 마치고 나면 공무원처럼 평생을 ○○군에 있는 병원에서 동네주치의로 지낼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반론도 있었다. 열심히 듣고 답했다. 어차피 내가 생각하는 ‘공공 의사제’라는 것도 부족한 대안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이 고통에 등 돌리지 않고 함께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이었으니까.
한두명에게라도 연락이 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토론이 끝나고 한달이 흘러가도록 아무도 연락이 없었다. ○○군 독자들 이야기를 들은 내가 의료 소멸 지역 목격자가 됐듯이 간담회에서 내 얘기를 들은 도의원들은 또 다른 목격자가 됐다. 그런데도 목격한 고통에 침묵했다. 그것은 그들이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이 아니라 해결하지 않는 고통이었다. 자신이 답할 수 있는 고통에 답하지 않는 삶은 어떤 삶일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1년이 지난 지금, 지방선거 벽보 앞에서 낯익은 얼굴을 본다. 그날 토론회 때 만났던 도의원들이다.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당신들이 하지 않은 일을 알고 있다.’ 얼굴들마다 빨갛고 파란 정당 표식을 달고 있었다. 이해가 됐다. 어차피 국민의힘 텃밭인 곳에서는 ‘묻지마 국민의힘’, 민주당 텃밭인 곳에서는 ‘묻지마 민주당’이니. 정당공천제 아래서 그들에게 의원 배지를 달아준 것은 투표한 시민이 아니라 소속 정당이었다. 그들의 관심도 시민의 고통이 아니라 정당의 이익이었다. 그래서 시민의 고통에 침묵할 수 있는 거였다.
그래도 선거였다. 누구를 찍어야 할지 고민했다. 자료를 찾아봤다. 그러다 ‘10대 춘천시의회 의정활동 평가보고서’라는 문서를 발견했다. 지난 4년간 시의원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꼼꼼히 분석 평가한 이 문서는 임기 동안 한번도 조례를 제정하지 않은 시의원이 누군지, 회기에 불출석 횟수가 가장 많은 시의원이 누군지 명시할 만큼 (심지어 둘은 동일인이다!) 생생한 기록이었다. 보고서는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지난 4년간 당신들이 하지 않은 일을 알고 있다.’ 언론의 무관심 속에서 6개월에 걸쳐 이 용기 있는 문서를 만든 사람들은, 놀랍게도 여덟명의 평범한 시민이었다.
지금의 양당정치가 만들어놓은 세상은 침묵으로 지어진 세상이다. 정치와 언론처럼 답할 수 있는 모두가 침묵하는 곳에서도 답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다는 정치’가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이 ‘하는 정치’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