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뒤 ‘도어스테핑’(Doorstepping)이라는 낯선 풍경이 생겼다. 출근하는 대통령을 잠시 멈춰 세운 대통령실 담당 기자들이 주요 현안에 대해 짧게 묻고 즉답을 듣는 ‘약식 회견’이다. 질문은 2~3가지, 길어도 5분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 첫 출근인데, 한말씀 해달라.” 취임식 다음날인 지난달 11일 아침 서울 용산 집무실 로비에서 예고 없이 시작한 관행이 지금껏 지속되고 있다. “취임사에서 ‘통합’ 얘기를 뺀 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 “(장관 임명은) 오늘 일부만”, “영세 자영업자 숨넘어간다”는 대통령의 애드리브성 발언이 이 문답에서 나왔다.
도어스테핑 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떠오를 만큼 그는 기자들과 만나는 기회를 즐기고 활용했다. 30분을 넘기는 일도 잦아 참모들이 애간장을 태웠다고 한다. “(북한이 미국을 계속 위협하면) 전례 없는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직면할 것”이라는 섬뜩한 발언으로 일파만파를 일으키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은 하루에도 여러차례 기자들과 마주친다.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와 기자회견장인 브리핑룸이 백악관 서관(웨스트윙) 1층에 같이 있기 때문이다. 190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추위에 떨고 있는 기자들을 백악관 안으로 불러들여 방 하나를 내어준 게 브리핑룸의 시초라고 하니 ‘동거’의 역사가 120년에 이른다. 대통령 전용 헬기가 뜨고 내리는 백악관 남쪽 잔디밭(South Lawn)도 도어스테핑 단골 장소로 유명하다. 일본에서는 총리의 도어스테핑을 ‘부라사가리’(ぶら下がり·매달리기)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도어스테핑은 윤 대통령이 처음이다. 과거 청와대와 달리 대통령 집무실과 기자실이 한 건물에 있게 되면서 ‘직접 소통’이 가능해졌다. 대통령이 출근 대신 외부 장소나 행사에 직행하는 날을 빼곤 매일 아침 30~40명의 기자가 대통령을 기다린다. 정례화 여부는 아직 모른다. 단문단답이라 오해의 소지가 있고, ‘언론플레이의 장’으로 역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언론이 사전 각본 없이 대통령의 생각을 물어볼 수 있는 ‘대면’의 기회는 중요하다. 어떤 때는 대통령의 얼굴을 스친 찰나의 표정이 백마디 말을 대신할 수도 있다.
강희철 논설위원
hc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