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는 1999년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제안한 개념이다. 영어단어 ‘decent’(디슨트)는 ‘괜찮은’ ‘제대로 된’ ‘온당한’이라는 뜻이다. 국제노동기구는 이를 “인간다운 생활을 지속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노동조건 중 하나”로 꼽고, 노동시간, 임금, 휴가일수, 노동의 내용 등이 인간의 존엄과 건강을 해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한 이를 위해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 실업보험과 충분한 고용, 고용 차별 폐지 및 최저임금 보장을 요구한다. 이런 조건이 확보됐을 때에야만 비로소 ‘괜찮은 일자리’가 실현됐다고 보는 것이다. 벌써 23년 전의 규정이다.
지난 2일 기업분석전문기관 한국시엑스오(CXO)연구소가 발표한 76개 대기업집단의 고용 변동 분석 결과를 보면, 최근 1년 새 일자리를 가장 많이 늘린 곳은 쿠팡으로 나타났다. 2020년 4만3402명에서 지난해 7만2763명으로 2만9361명을 늘렸는데, 76개 전체 증가분의 46.1%를 차지한다. 특히 쿠팡풀필먼트서비스(물류센터)는 1만9962명에서 2만6644명으로 늘어 쿠팡 고용 증가의 일등 공신으로 꼽혔다.
이렇게 ‘일자리 창출의 큰손’으로 칭송받은 쿠팡이 노조활동을 해온 인천물류센터 비정규직 노동자 2명과 재계약을 거부한 사실이 최근 드러나 입길에 올랐다. 이들은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해왔다. “찜통더위와 영하 추위를 견딜 냉난방 장치를 설치해달라”는 손팻말 시위가 주된 활동이었다. 쿠팡풀필먼트서비스는 3개월·9개월·1년짜리 계약을 맺고, 2년을 채운 노동자 중 일부만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쪼개기 계약’을 해왔다. 쿠팡 쪽은 그간의 쪼개기 계약을 인정하면서도 “지난해 12월부터는 계약직 근로자의 최초 근로계약 기간을 1년으로 변경했고, 전환 대상자 중 약 90%의 직원들이 계약이 갱신되거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초 계약기간을 1년으로 바꾼 뒤 3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치고 ‘수습기간에는 해고할 수 있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담았다.
‘괜찮은 일자리’에 관한 논의는 20여년 동안 확장돼왔고, 이제는 바티칸의 주요 관심사가 됐다. 지난해 6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이엘오 총회에 영상 메시지를 보내 “노조 가입은 권리”라며 “적절하고 품위있는 노동”을 강조했다. 한국도 아이엘오 7개 핵심협약 비준국이지만, 현실은 제자리걸음이다. 일자리 창출 1위 대기업 쿠팡의 계약 방식과 열악한 노동환경은 ‘괜찮은 일자리’ ‘적절하고 품위있는 노동’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보인다.
유선희 경제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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