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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병사 월급 200만원의 의미

등록 2022-06-06 18:21수정 2022-06-07 14:13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이었던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윤석열 대통령 페이스북 갈무리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이었던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윤석열 대통령 페이스북 갈무리

[숨&결] 방혜린 | 전 군인권센터 활동가·예비역 대위

얼마 전 김건희 여사 온라인 팬클럽 카페에 윤석열 대통령 자택 테러 예고 글을 남긴 10대 남성이 협박 등의 혐의로 지난 4일 검거되었는데, 그는 경찰에서 윤 대통령의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이 지켜지지 않아서 불만을 품고 썼다고 진술했다. 그는 문제가 된 글에서 ‘군대 월급 200만원 준다고 해서 휴학했는데 시간 낭비하게 됐다’고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잠시 시계를 돌려 20대 대선 당시로 가보자.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은 당시 여당 후보 이재명 의원도 내세웠고, 정의당 후보 심상정 의원은 300만원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당시 대선에서 병사 월급을 최소 200만원 수준으로 인상하는 것은 주요 후보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합의된 사항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따져보면 두 후보와 윤 대통령 공약이 시작부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재명, 심상정 의원은 모두 모병제 등 병역제도 개편의 조건을 걸고 공약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병역제도 개편과 군 구조개혁 등의 조건 없이 ‘병역의무 이행에 대한 사회적 존중 공약’으로 제시하였다. 대통령은 대선 당시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곳에 쓴 예산을 삭감”하면 병사 월급 인상이 당장에 가능하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두 후보와 윤 대통령의 공약 차이는 엄밀히 말해 병역제도의 개편이 아니라, 병사들의 법적 지위와 노동자성을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차이에 있었다. 모병제 전환은 병사를 징병체계를 통해 수급했다는 이유만으로 값싸게 부려먹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직업인으로서 적절한 임금과 수당, 복지를 누릴 수 있는 지위를 부여하겠다는 의미와 같다. 직업군인과 같은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위의 에스엔에스 글에서 직접 언급한 대로 “국가안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이 불가피할 때 그 희생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제대로 설계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역할”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 부분은 논란만 계속 커지다, 결국 병사 월급을 2025년까지 150만원 수준으로 올리고, 정부지원금을 덧붙여 월 실지급액을 205만원 수준으로 하는 단계적 상향안으로 절충되는 모양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5월11일 백령도 해병대 부대를 방문해 “정권을 인수하고 보니 재정 공약을 완전히 지키기 어려운 상황”, “재정 상황이 나아지면 원안에 가깝게 실천하는 걸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궁색한 답변만 남겼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에 대해 여전히 ‘이대남 달래기’ 수준에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병역의무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은 병사들이 청약가점이나 군 경력 호봉 인정, 200만원 수준의 월급을 보장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병사라는 계급이 가지는 법적 지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병사는 공무원과 같은 임무를 수행하고, 월급도 나라에서 받으며, 행정처분으로 징계도 받는다. 그러나 징집병이라는 이유로 소모품처럼 사용되다 전역하면 그만인 취급을 받는다. ‘필요할 때는 강제로 불러서 쓰더니 괴롭힘을 당해도, 다쳐서 나와도 남 일’이 될 수밖에 없는 지위를 가지고 있기에 사회적 존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다.

병사 월급 200만원에 담긴 직업인으로서의 지위와 성격을 모두 헤아릴라치면 병역제도 개편부터 공무원 봉급체계까지 손을 대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병역제도 개편은 군 구조개혁, 나아가 국가의 안보전략과도 맞닿는다. 징집인구가 크게 줄면서 현 병역제도로는 2030년 이후 병력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된 바 있다. ‘일단 이번만 달래서 넘어가면 된다’는 식으로 월급만 맞춰 준다고 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는 몇년 뒤 더 큰 부담으로 들이닥칠 문제가 산더미다. 대통령이 병사 월급 200만원이라는 한 줄 문장 속에 담긴 이 의미를 제대로 보고 있는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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