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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선거 뒤 헛헛한 마음

등록 2022-06-13 18:03수정 2022-06-14 02:38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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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김원규 | 변호사·전 국가인권위 직원

3월 대선에 이어 6·1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니 노무현 정부 등장으로 시작된 정치권력 순환의 한 주기가 끝난 느낌이다. 이 순환의 정치적 의미에 관해서는 별도의 분석과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인권 보장을 실효적으로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통한 인권 보장 기제의 강화만으로는 부족하고 사회 속에 뿌리내린 시민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진지들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인권은 국가의 권력남용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가치였다. 그래서 시민들의 집회·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한 경찰관들이 “나도 시위대에 의해 인권을 침해당했다”고 항변했을 때 “공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인권 뒤에 숨을 수 없다”고 반박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국가 영역에 속하지 않는 ‘기업과 인권’이나 ‘노동인권’이 인권의 주요 테마 중 하나로 등장하게 됐다. 기업은 원래 기업가의 창의적 정신이 최고로 대접받는, 사적 자치 원칙이 관철되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유엔은 2000년대 들어 국가 못지않은 강자로 등장한 기업도 이제는 인권 실현의 주요한 책무자라고 선언했다.

기존에 사적 자치 원칙이 지배적으로 관철됐던 영역에 인권이 침투하는 것은 약자 존중 정신이 고양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필연적 현상이다. 차별금지법도 국가 영역에 머물러 있던 평등의 원칙을 사회 속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것이다. 특히 재벌이라는 거대 시장권력이 존재하는 우리 현실에서는 시장권력의 인권침해에 개인이 대처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기에 국가를 통한 시장권력 통제가 필요하다. 한해 1천명 가까운 산업재해 사망자 수를 줄여야 한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마이동풍인 현실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필요하다.

그러나 법과 제도 중심의 인권가치 확산은 위험한 측면도 있다. 사회 속 인권 보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법과 제도를 만들수록 그만큼 국가권력의 사회 속 개입 통로도 확대되기 때문이다. 국가는 결코 선한 중립자가 아니다. 국가가 작당해서 만들어낸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범이 누명을 벗는 데 24년이 걸렸고, 시장·검사장·경찰청장 등 고위공직자들의 불법 선거 공모 현장을 녹음한 사람에게 주거침입죄를 인정한 초원복집 사건 판례가 상식에 맞게 바뀌는 데 25년이 걸렸다.

사회 속 인권가치 확산은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고 인권 주체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국회에 상정된 차별금지법안도 국가의 개입이 차별행위자를 처벌하는 방식이 아니라, 차별행위자가 잘못을 스스로 돌아보도록 차별행위 시정을 권고하고 설득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 사회 속 인권 보호는 각성한 시민들이 주도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면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던 학생운동 단체들이나 인권가치 확산에 기여했던 시민운동 단체들, 그리고 노동자를 ‘작업복 입은 시민’으로 등장시켰던 노동조합들의 존재감은 줄어만 가고 있다. 사회 영역에서 성장하고 활동하던 주요 활동가들이 정치 영역 등 공적 영역으로 대거 빠져나갔지만, 이들의 역할을 이어받을 세대교체는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다. 상당수 시민사회단체가 소멸했고, 명맥을 유지하는 단체들도 상당수는 인력 단순재생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더군다나 공적 영역으로 진출한 활동가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추락하는 모습은 남아 있는 활동가들의 그나마 버텨낼 힘까지 앗아가기도 했다.

누군가는 ‘시민 없는 시민단체’ ‘학생회조차 꾸리기 어려운 학생사회’ ‘이기적 조직의 화신 노동조합’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지난 40여년 동안 쉼 없이 발전해온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 역량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고 싶다. 국가권력과 시장권력으로부터 시민들의 인권 보장을 강화하기 위한 그동안의 시도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시민들의 에너지를 어떻게 다시 조직할 수 있을지, 정치 영역의 한계가 무엇이고 사회 영역의 독자적인 지속 가능성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 함께 논의라도 하면서 이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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