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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우크라이나에서 대만까지, 중국 항공모함 비사

등록 2022-06-21 15:23수정 2022-06-22 08:31

중국 인민해방군 농구 선수 출신의 홍콩 사업가 쉬쩡핑은 1990년대 후반 인민해방군 고위 장성들의 간곡한 부탁을 받았다. 미국의 의심을 피해 우크라이나에 있는 옛 소련 항공모함(항모)을 구매해 달라는 것이었다. 흑해에 있는 우크라이나 니콜라예프 조선소에는 소련이 해체되는 와중에 공정이 70% 진전된 상태에서 미완성으로 남은 쿠츠네초프급 항모 바랴그가 방치되어 있었다. 쉬쩡핑은 1997년부터 이 항모를 2000만달러에 사들이는 비밀 작전을 시작했다.

쉬쩡핑은 미국 정보 당국의 의혹을 피하기 위해 마카오에 수상 카지노를 짓고 싶어하는 괴짜 거물 사업가의 이미지를 꾸몄다. 키이우에 사무실을 열고, 소련으로부터 갑작스러운 독립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우크라이나 관리들과 조선소 관계자들에게 돈과 선물을 건넸다. 1998년 마침내 거래가 성사됐지만 1999년 미국이 유고슬라비아 주재 중국 대사관을 오폭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미-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바랴그함은 터키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15개월 동안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 2000년 4월 터키를 방문해 경제적 혜택을 약속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2002년 3월 바랴그함이 랴오닝성 다롄항에 도착했다. 쉬쩡핑은 2015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외부에는 카지노로 개조할 용도로 고철 덩어리 항모를 들여오는 것처럼 정보를 흘렸지만, 실제로는 전혀 손상되지 않은 4대의 신형 엔진도 몰래 들여왔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은 바랴그함을 바로 개조하지 않고, 관련 연구를 하면서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미국과 주변 국가의 경계심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행보였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미국의 힘이 약화되었다고 판단한 뒤에야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2009년 4월 후진타오 주석이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어 항모 건조 계획을 공식 승인한 뒤, 바랴그함 개조를 시작해 2012년 중국 첫 항모 ‘랴오닝함’으로 탈바꿈시켰다. 2017년에는 2번째 항모 산둥함을 진수했다. 지난 17일에는 3번째 항모인 푸젠함을 진수했고, 핵 추진 방식의 첨단 항모 건조 계획도 진행중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단기간에 항모 전력을 급속도로 발전시킨 데는 우크라이나에서 들여온 바랴그함의 엔진과 설계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이 3번째 항모의 이름을 대만과 마주한 지역인 ‘푸젠’으로 붙인 것은 대만을 겨냥한 경고로 여겨진다. 푸젠함 진수식이 열릴 무렵 중국이 ‘대만해협은 국제수역이 아니라 중국 영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3일 “국제해양법엔 근본적으로 ‘국제수역’이란 말이 없다”면서 “관련 국가들이 대만해협을 국제수역이라 주장하는 것은 대만문제에 개입해 중국의 주권을 위협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항모를 비롯한 해군 전력을 강화하면서, 한편으로 ‘대만 무력 통일’을 대비해 자국의 입장을 정당화하려는 외교적 준비를 시작한 것일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불확실성이 짙어진 시대에, 동아시아에서도 ‘전쟁과 평화의 고민이 깊어졌다.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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