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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봉규의 사람아 사람아] 나무는 알고 있다, 나무야 말해다오!

등록 2022-06-21 18:13수정 2022-06-22 02:35

제노사이드의 기억 독일 _03
나무와 인간은 소통할 수 없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무에게 간절하게 물었다. “나무야 나무야, 그날들을 기억해? 사람들이 독가스와 총에 맞아 죽고, 불태워져 학살당하던 그때를 말이야.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나에게 말을 해다오!” 하지만 나는 나무에게 인간의 언어로 물었고, 나무들이 내가 가엽게 보여 무슨 신호를 보냈더라도 나는 나무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하우 강제수용소는 1933년 나치 독일이 최초로 세운 강제수용소다. 수용소 건립 당시에도 주변 건물보다 컸던 나무들은 지금은 10층 건물보다 더 높이 자라 수용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2019년 3월3일 흑백으로 기록했다. 뮌헨/김봉규 선임기자
다하우 강제수용소는 1933년 나치 독일이 최초로 세운 강제수용소다. 수용소 건립 당시에도 주변 건물보다 컸던 나무들은 지금은 10층 건물보다 더 높이 자라 수용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2019년 3월3일 흑백으로 기록했다. 뮌헨/김봉규 선임기자

지난 16년간 민간인 대량 학살 터를 헤매고 다니면서 어려웠던 점은 현장에서 당시 생존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실상 그런 일은 흔치 않았다. 제주 4·3 때 극적으로 살아난 생존자 몇분을 공식 행사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고, 르완다와 캄보디아 킬링필드 현장에서 우연히 생존자들을 만난 일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생존자 증언은 인터넷 또는 그들이 출간한 생존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 애쓰던 시절, 학살 터에서 공통으로 존재하는 한가지를 찾아냈는데, 바로 ‘나무’였다. 제주 4·3 때 토벌대(진압군)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학살한 뒤 집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렸지만, 마을 들머리 야트막한 언덕엔 나이 든 당산나무가 자리잡고 있었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학살 터인 츠엉에크에는 크메르루주 군이 한살배기 어린아이들의 발목을 잡고 기둥에 머리를 내리쳐 죽였던 보리수나무가 아직도 서 있다. 아프리카 르완다, 유럽의 강제수용소에서도 학살 터에는 큰 나무가 있었다. 그렇게 몇해에 걸쳐 학살 터 나무들을 살펴보던 중 인터넷에서 1933년 독일 뮌헨 근교 다하우 수용소 건립 당시 사진에서도 흐릿하게 서 있는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사진 속 나무들에 묘한 끌림을 느꼈다.

오로지 수용소에서 아직도 살아 있는 그 나무들을 보기 위해 2019년 3월 초 뮌헨으로 향했다. 미국 홀로코스트기념관 자료를 보면, 다하우 수용소는 나치 독일이 공식적으로 세운 최초의 강제수용소다.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뒤이은 다른 강제수용소들의 원형이 됐다. 수용소 건축 형태는 물론 운영 방식까지.

나치 독일 시절 다하우에는 총 30개국 사람 20여만명이 강제수용돼 있었다. 다하우 수용소에서 2만5천여명이, 140여개 보조 수용소에서 1만여명이 희생됐다. 다하우는 1945년 4월29일 미군에 의해 해방됐는데, 당시 미군 장성(준장)이 작성한 ‘다하우 강제수용소의 항복에 관한 보고서’에는 “수용소 접수 당시 수감자 4만2천여명은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많은 사람이 티푸스에 걸렸다. 수용소 안에서 열차 40량을 찾았는데 열차마다 100구 이상 주검이 가득했다”고 기록돼 있다. 다하우 강제수용소는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나치의 의학 실험이 제일 먼저 시작된 곳이다. 의사였지만 정치범으로 수감됐던 프란츠 블라하는 수용소 병원 외과의사로 일하면서 직접 7천여건, 그의 주관 아래 1만2천여건의 해부가 이뤄졌다고 진술했다.

수용소 정문을 지나자 인터넷에서 흑백사진으로 보았던 나무들은 건물 10층 이상 높이로 훌쩍 커버려 수용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무는 성장을 멈춘 듯 겉가죽은 골이 깊이 파이고 거칠었지만,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날이 따뜻해지면 이파리들이 풍성하게 달릴 것 같았다. 그 나무 옆으로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가고 있었다. 모든 나무는 일련의 숫자가 새겨진 쇠붙이 표식을 달고 있었다. 박물관 안내인에게 나무 이름을 물어보니 ‘포플러’라는 답이 돌아왔다. 버드나무과에 속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에서 들어왔다는 뜻에서 ‘미루(美柳)나무’라고 부르는 나무다.

나무들을 한참 바라보자니 독일에 오기 전에 읽은 책 <식물은 알고 있다>가 떠올랐다. 유전학 박사 대니얼 샤모비츠가 쓴, ‘나무들도 보고, 냄새 맡고, 기억할 수 있다. 나무만 뿜어내는 특유의 화학물질로 나무끼리 은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책이었다. 나무와 나무가 서로 소통한다는데, 나무와 인간은 소통할 수 없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무에게 간절하게 물었다. “나무야 나무야, 그날들을 기억해? 사람들이 독가스와 총에 맞아 죽고, 불태워져 학살당하던 그때를 말이야.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나에게 말을 해다오!”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나무에게 인간의 언어로 물었고, 나무들이 내가 가엽게 보여 무슨 신호를 보냈더라도 나는 나무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나절 나무 곁을 서성거리다 그림자가 길게 드리울 즈음 나무에게 작별을 고하고 뒤돌아섰다.

김봉규 | 사진부 선임기자
다큐멘터리 사진집 <분단 한국>(2011), <팽목항에서>(2017)를 출간했다. 제주 4·3 학살 터와 대전 골령골을 비롯해 전국에 흩어진 민간인 학살 현장을 서성거렸다. 안식월 등 휴가가 발생하면 작업지역을 넓혀 캄보디아 ‘킬링필드’를 비롯한 아시아, 폴란드 전역과 독일, 네덜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등 나치 시절 강제 및 절멸수용소 등을 15년 넘게 헤매고 다녔다.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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