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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봉규의 사람아 사람아] 돌 매단 채 바다로 떠밀려진…아, 아버지!

등록 2023-11-14 19:07수정 2023-11-15 02:38

제노사이드의 기억 전남 장흥
장흥경찰서에 갇혔던 45명이 1950년 7월22일 밤 11~12시 사이 트럭에 실려 바닷가로 끌려갔다. 낌새를 알아차린 한명은 고갯길에서 트럭 속도가 느려질 때 뛰어내려 탈출했고, 9명은 중간에 달아나다 총에 맞아 숨졌다. 무순리 앞바다에 도착한 35명은 배에 태워져 바다로 나간 뒤 서너 사람씩 새끼줄로 묶여 돌멩이를 매단 채 득량만 바다로 떠밀렸다.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장흥유족회 유가족들이 지난 2021년 12월22일 전남 장흥군 안양면 수문리 선착장에서 희생자들의 혼백이 깃든 볏짚단을 안고서 바닷물이 보이는 선창가로 줄지어 걸어가고 있다. 장흥 유가족들은 전쟁이 터지자 예비검속됐던 아버지들이 경찰에 끌려가 수장됐어도 빨갱이 자식이라고 손가락질받을까 두려워 71년 동안 숨죽이며 살아오다 이날에야 처음으로 합동 위령제를 봉행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장흥유족회 유가족들이 지난 2021년 12월22일 전남 장흥군 안양면 수문리 선착장에서 희생자들의 혼백이 깃든 볏짚단을 안고서 바닷물이 보이는 선창가로 줄지어 걸어가고 있다. 장흥 유가족들은 전쟁이 터지자 예비검속됐던 아버지들이 경찰에 끌려가 수장됐어도 빨갱이 자식이라고 손가락질받을까 두려워 71년 동안 숨죽이며 살아오다 이날에야 처음으로 합동 위령제를 봉행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어머니는 바닷가에서 매일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계룡이 아버지! 어디 있소!! 살아있으면 대답 좀 하시오!!!”

한국전쟁 때 13살 소년은 그 어머니 손을 잡고 전남 장흥군 득량만 바닷가에서 아버지 주검을 찾으려고 한달 동안 바닷가를 돌아다녔다. 71년 전 소년은 어느덧 세월이 흘러 84살 백발노인이 되었다.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장흥유족회장을 맡은 조계룡씨다.

장흥유족회 유가족들은 2021년 12월22일 전남 장흥군 안양면 수문리 선착장에서 제1회 장흥군 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합동 위령제를 봉행했다. “빨갱이 자식”이라고 손가락질받을까 두려워 숨죽이며 살아오다가 70년 세월이 흘러서야 첫 위령제를 지낼 수 있었다. 위령제가 열린 수문리 바닷가(득량만)는 한국전쟁 때 1950년 7월22일 보도연맹으로 가입된 민간인들이 바다에서 집단으로 수장, 학살된 장소다. 조 회장 아버지도 이때 희생되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장흥지역 국민보도연맹원 1천여명 중 예비검속되어 장흥경찰서에 갇혔던 45명이 1950년 7월22일 밤 11~12시 사이 트럭에 실려 바닷가로 끌려갔다. 낌새를 알아차린 한명은 고갯길에서 트럭 속도가 느려질 때 뛰어내려 탈출했고, 9명은 중간에 달아나다 총에 맞아 숨졌다. 무순리 앞바다에 도착한 35명은 배에 태워져 바다로 나간 뒤 서너 사람씩 새끼줄로 묶여 돌멩이를 매단 채 득량만 바다로 떠밀렸다.

장흥이 어떤 곳인가.

“동학농민혁명이 잦아들 무렵, 장흥은 최후의 전투와 혁명 활동이 벌어진 지역이다. 동학농민혁명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전국적 규모로 일어난 최초의 농민항쟁이었고, 봉건적 수탈에 저항한 민중혁명이며, 서양 열강과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에 항거하며 민족의 자주성을 수호하려는 근대 민족운동의 출발점이다. 그 지역 가운데 장흥이 있다.”(장흥문화공작소 ‘1894 석대들 장흥 동학마을 이야기’ 2020년)

문충선 장흥문화공작소 이사는 “이곳은 동학농민혁명의 지역입니다. 그러다 보니 서울이나 다른 지역하고는 다르게 마을 사람들끼리 끈끈함과 동질성이 강합니다. 해방 전후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독립운동과 통일된 국가를 꿈꾸며 농민 운동을 같이하게 되는 분위기가 있었죠”라고 말했다. 자주성과 저항의식이 강하면서 남달랐던 곳이란 얘기다.

코로나19 역병이 창궐할 때였지만 위령제가 열리던 날 하늘은 청명해 구름 한점 없고 바다는 잔잔했다. 한겨울이었지만 한낮 햇살에 살갗이 따가웠다. 갈매기들이 한가로이 바다 위에서 쉬고 있었고, 저만치에선 작은 고깃배들이 닻을 내리고 있었다. 위령제가 열리는 부둣가에 내걸린 ‘제1회 장흥군 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합동 위령제’라고 쓰인 펼침막엔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대나무 솟대에 하얀 천이 매달려 있었고, 그 아래 지푸라기로 엮어 만든 십자가 모양의 볏짚단들이 조화와 함께 쌓여있었다.

상여 나갈 때 부르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면서 위령제가 시작됐다. 슬픈 마음을 달래주는 남도민요 ‘흥타령’도 흘렀다. 노랫가락이 애절하다. 구천에 떠도는 혼백들이 먼바다에서 구슬픈 노랫소리를 듣고 모여들 것만 같았다. 오월의 노래 1, 2가 이어서 들렸는데, ‘아! 여기가 남도의 땅이구나’ 탄식이 절로 나왔다. 동네 개들도 머리를 하늘로 들어 울어댔다.

유가족들이 바다를 향해 절을 올렸다.

“이제 여기 후손들과 마을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술 한잔 올리니 부디 동무들과 어울려 해원하소서. 배고픈 시절 먼바다 고깃배 타고 나갔다 돌아가신 수문 사람들도 만나 음식 나누소서.”

마무리 식순으로 유가족들이 희생자의 혼백이 깃든 볏짚단과 국화 하나씩 가슴에 안고 줄지어 바닷물이 보이는 선창가로 걸어갔다. 유가족들 머리 위로 하얀 종이 가루가 뿌려졌는데 역광의 햇빛에 투영되어 반짝거리며 눈을 부시게 했다. 유족들은 가슴에 안았던 볏짚단을 바닷가에 가지런히 내려놓고 국화 송이는 바다로 던졌다. 마지막에 볏짚단은 한곳에 모아 쌓아서 불태웠다. 바람이 없으니 불길과 연기는 곧장 하늘로 타올라갔다.

유가족들 모두 말 한마디 없었다. 위령제 내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은 듯했다. 각자 숨죽여 살다가 71년 만에 처음으로 희생자들 자식이 한자리에 모여 바닷가 구천에서 떠도는 부모님에게 술 한잔 올린 것이 전부였다. 그때였다. “지금이라도 유해를 발굴해 양지 쪽에 묻어드려야 눈을 감을 수 있을 텐데….” 우울한 눈빛으로 먼바다를 바라보던, 주름살이 깊게 파인 팔순 넘긴 노인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김봉규

사진부 선임기자. 다큐멘터리 사진집 ‘분단 한국’(2011), ‘팽목항에서’(2017)를 출간했다. 제주 4·3 학살 터와 대전 골령골을 비롯해 전국에 흩어진 민간인학살 현장을 서성거렸다. 안식월 등 휴가가 발생하면 작업지역을 넓혀 캄보디아 ‘킬링필드’를 비롯한 아시아, 폴란드 전역과 독일, 네덜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등 나치 시절 강제 및 절멸수용소 등을 15년 넘게 헤매고 다녔다.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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