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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칠레 ‘군사독재 헌법’ 이번엔 끝낼까

등록 2022-07-08 19:00수정 2022-07-09 01:15

[한겨레S] 다음주의 질문
지난 6일(현지시각) 칠레 산티아고에서 시민들이 새 헌법 깃발과 칠레 국기를 들고 흔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 6일(현지시각) 칠레 산티아고에서 시민들이 새 헌법 깃발과 칠레 국기를 들고 흔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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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제헌의회가 1년여의 논의 끝에 마침내 헌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은 4일(현지시각) 개헌안을 전달받으며 “오늘 우리는 새로운 단계를 연다”고 감격했다. 그동안 과정을 되돌아보면 그의 감격은 그럴 만해 보인다.

개헌은 2019년 10월 폭발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 비롯했다. 애초 시위는 정부의 지하철 요금 인상에 대한 항의로 시작했지만, 순식간에 불타올라 칠레 사회의 고질적인 불평등에 대한 광범한 개혁 요구로, 또 칠레 사회를 재설계하기 위한 개헌 요구로 확대됐다. 칠레는 1990년 피노체트 군사독재를 몰아내고 민주화를 이뤘지만, 당시 제정된 신자유주의 헌법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렇게 해서 제헌의회는 지난해 5월 선거를 거쳐 155명의 의원으로 구성됐고, 이들은 1년 남짓 활동하며 개헌안을 만들었다. 지난 5월엔 499개 조항으로 이뤄진 개헌안 초안을 공개했으며, 이번 최종안은 당시 초안을 388개 조항으로 압축해 가다듬은 것이다.

개헌안은 앞으로 칠레 사회가 지향해 나갈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개헌안에는 언론의 자유와 임신중지권, 공공의료와 교육을 받을 권리, 깨끗한 환경을 누릴 권리 등 다양한 사회적 권리가 포함돼 있다. 정부기구 등 모든 공직에 남녀 동수로 고용할 것을 보장하고, 인구의 13%를 차지하는 원주민의 자치권도 인정하고 있다. 또 수돗물 민영화 사업을 되돌릴 길도 열어놓고 있다. 칠레는 1980년대 수돗물을 민영화해 비싼 물값과 고질적인 물 공급 부족에 시달려왔다.

이런 진보적 내용은 제헌의회 선거에서 무당파와 진보적 색채가 강한 인사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집권당을 포함한 기존 보수정당들은 21% 득표에 그쳐 개헌 논의의 주도권을 잃었다.

2019년 시민 저항의 뜻을 담아낸 개헌안은 오는 9월4일 국민투표에 부쳐질 예정이다. 그러나 통과는 장담하기 어렵다. 2020년 10월 국민투표에선 유권자의 78%가 개헌에 찬성했지만, 막상 확정된 개헌안에 대해선 부정적 여론이 많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선 반대가 51%로 찬성(34%)보다 많았다. 보리치 현 대통령은 새 헌법 지지를 밝히고 있지만, 리카르도 라고스 전 대통령은 “개헌안이 충분한 합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개헌안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는 지난 1년간 제헌의회 논의 과정에서 불거진 격렬한 논쟁과 대립 등 각종 논란이 녹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보수진영에서는 개헌 논의가 진보 의제에 치중됐다는 불만을 표출해왔다. 또 개헌안에 상원을 없애고 단원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정치개혁이 포함된 것도 논란이 많이 되고 있다. 정치전문가 케네스 벙커는 “사람들은 상원 폐지 하나를 막기 위해 개헌안 자체에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개헌안 찬성은 388개 조항에 모두 이의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개헌안 반대가 더 쉬운 선택지라는 뜻이다.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 1980년대 피노체트 독재의 유산인 현행 헌법이 효력을 유지한다. 그렇게 되면 새로 제헌의회를 구성해 다시 개헌안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이지만, 혼란과 좌절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투표까지 남은 두달, 이제 선택은 칠레 국민에게 달렸다. 박병수 국제팀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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