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발언하기 위해 일어서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김은경 혁신위원회 1호 안건이 뭐였나? 불체포특권 포기였다. 이재명 대표부터 그렇게 하셨나.”(홍영표 의원), “직접민주주의가 정치권력과 결합할 때 독재 권력이 된다는 것을 나치(독일)에서 봤다. 우리가 그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이원욱 의원)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의 현역 의원과 원외 지역위원장 등 490명이 모인 중앙위원회에서는 이재명 대표를 향한 몇몇 의원들의 성토가 터져나왔다. 대의원 권한을 축소하고 총선에서 현역의원 평가를 강화하려는 당헌 개정안에 일부가 반발한 것이다. 개정안은 중앙위원 605명 중 490명이 참석한 가운데 67.6%(331명)가 찬성해 통과됐지만 이 대표 면전에서 “민주주의 훼손”, “나치”, “독재” 등의 독설이 쏟아진 장면은 당내 갈등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럼에도 이날의 승강이는 이 대표가 현재 처한 ‘조용한 위기’에 견주면 차라리 덜 위협적이다. 당내에서 계파를 막론하고 ‘이재명 리더십’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어서다.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9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승리(10월)로 이 대표는 지난해 3·9 대선 패배 뒤 처음으로 꽃가마에 올라탄 듯했다. ‘검찰 정권’이 일방독주하는 시대에 총선을 앞두고 야당 당수로서 비로소 정치적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당내엔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이재명이 혁신을 명분으로 칼질에 나설 것인가, 야권을 한데 모아내는 통합의 역량을 보여줄 것인가.’ 주류와 비주류 모두의 눈길이 쏠린 터였다.
그러나 이 대표가 단식투쟁으로 상한 몸을 치료하고 지난 10월23일 당무에 복귀한 뒤, 당내에선 “이재명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이낙연 전 대표가 장외에서 연일 ‘회동 정치’로 신당 창당 가능성을 시사하며 여론전을 펼치고 있지만 ‘이 대표가 누구를 만났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국민의힘에선 인요한 혁신위원장과 이준석 전 대표가 만난다는 것조차 기사가 되잖나. 사법리스크마저 줄어드니 이재명 대표에 대한 기사가 아예 안 나온다”고 자조했다.
이 대표가 내미는 의제들도 힘있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뜬금없는 ‘경제성장률 3% 달성’ 주장은 야당 대표의 구호로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왔고, ‘횡재세 도입’ 주장은 윤석열 정부의 관치금융을 비판하던 민주당엔 이율배반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런 주장들이 일관된 비전 아래 모이지 못하고 “중구난방식으로 제기되며 급할 때 써먹는 카드로만 보인다”(국회 정무위 민주당 관계자)는 데 있다.
총선을 앞두고 ‘혁신 공천’의 가능성도 흐릿하다. 민주당에선 70대에 들어선 ‘올드보이’들까지 재등판을 예고하고 있지만 이 대표가 이들에게 단호한 메시지를 줄 가능성에 대해 당 관계자들은 대부분 고개를 가로젓는다. “본인도 필승 지역인 인천 계양을에서 재선에 나설 텐데, 누구의 출마를 막겠느냐”는 것이다. 이 대표에게 우호적이었던 이들조차 벌써부터 “대선 출마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우려와 함께 내놓고 있다. 진짜 위기는 보이지 않게 조용히 덮쳐오고 있다.
엄지원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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