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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울 말고] 바다의 달, 숲의 별

등록 2022-07-10 18:20수정 2022-07-11 02:37

티브이엔(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한 장면. 유튜브 화면 갈무리
티브이엔(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한 장면. 유튜브 화면 갈무리

[서울 말고] 이나연 | 제주도립미술관장

작년 여름엔 이 지면에서 제주에서 자리돔이나 콩잎을 드셔보시라고 권했는데, 이 권유가 반응이 있었다. 단골 술집 사장님이 기사를 스크랩해서 냉장고에 붙여주셨던 정도이긴 해도, 지면을 통해 미지의 독자들을 향해 일방적으로 말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현실 반응이 반갑다. 비교적 덜 유명한 특산물을 소개하는 일은 그 지역에서만 내세울 수 있는, 지리적 차이로 인한 정보의 낙차를 활용한 고급 서비스다. 현지인만 아는, 현지인이 안내하는 명소나 맛집은 로컬 체험의 명분 아래 관광객 호기심을 단숨에 끌 수 있다. 자, 그래서 점점 더 더워지기만 하고 시원해지는 일은 없는, 개인적으로 그다지 즐기지 않는 계절인 여름을 맞이하며 다시 한번, 제주에서 여름에 즐길 거리는 바다와 오름, 자리돔과 콩잎 말고,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먼 곳으로 휴가도 떠나기 어려워 보이는 올여름, 남들이 피서를 오는 지역에서 삐뚤어지지 않고 내 나름으로 제주를 재발견하고 이 안에서 새롭게 여행을 해보기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끝끝내 멋진 두가지 ‘즐길 거리’를 찾아냈다. 달과 별. 바다에 내려온 달, 한치잡이배와 숲에 내려온 별, 반딧불이다.

최근 종영한 제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소원을 들어주는 100개의 달’이라는 은유를 붙여 보여준 장면은 바로 한치잡이배들이 깜깜한 바다에 떠 있는 모습이었다. 하나둘 출항한 배들이 먼바다로 나가 이곳저곳에 정박해 집어등을 밝혀둔 것을 밤 비행기 위에서나, 중산간의 지대가 높은 곳에서 보면 별보다는 훨씬 밝고 또 노란 빛들이라 작은 달이 여러개 뜬 것처럼 보인다. 6월 초 시네마템플이라고, 한라산 중턱 관음사에서 야외 영화상영을 하는 행사에 다녀왔다. 산 위에서 서쪽으로 노을이 완전히 넘어가는 것을 보는 것도 장관이었는데, 자연 빛이 사라지자 인공 빛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프로젝션을 쏜 영화 이미지가 점점 더 선명해지고, 도시 불빛도 아름다워 보이고, 무엇보다도 한치잡이배들이 정말 100개의 달처럼 강한 빛을 냈다. 나한전이라고 적힌 표지를 따라 오르막을 한번 더 오르니 훨씬 높은 곳에서 100개의 달을 볼 수 있었다. 인상적인 여름의 이미지였다. 예전에는 6월 초에야 시작한 한치잡이는, 2~3년 전부터 4월 말에 시작하고 있단다. 수온 상승 탓이다. 한치를 일찍 즐기고, 100개의 달도 일찍 볼 수 있어 좋다는 말은 차마 못 쓰겠다.

이번에는 별 이야기. 제주에서 나고 자란 나조차 이제껏 잘 모르고 지냈으므로, 대부분의 사람이 모를 거라는 전제 아래, 저는 반딧불이의 숲을 거닐었답니다, 하고 자랑을 해보려는 참이다. 산양큰엉곶은 마을 공동목장이었던 곶자왈 지역을 관람객에게 열기 시작한 생태숲길이다. 올해 2월에야 공식 오픈했지만, 이곳은 사실 공식적인 산책로가 되기 전부터 사진가들에게는 반딧불이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이제 공식적인 프로그램을 갖게 된 만큼 사전예약을 받아 주민분 안내를 받으며 안전하게 반딧불이의 숲을 거닐 수 있게 됐다. 여기선 자연이 만들어낼 빛을 잘 보기 위해 인공 빛이 최소화된 상태가 중요해졌다. 숨소리조차 아껴, 조용조용히 할 것을 당부받고 모든 불이 꺼진 숲을 가만히 걷기만 했다. 늘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조명 아래 길을 걷다가 반딧불이를 배려해 깜깜한 숲을, 그들 눈치를 살피며 조용조용 걷는 기분이 좋았다. 우리 존재 자체가 별로 달갑진 않겠지만, 그래도 최대한의 배려를 하고 있다고 생색을 내보는 것이었다. 여기 하나, 저기 하나, 반짝이고, 여기로 저기로 빛을 달고 천천히 움직이는 반딧불이를 보는 일은 싫증이 나지 않았다. 인공 조명이 늘어 짝짓기에 문제가 생기고, 환경오염으로 반딧불이 개체 수도 예전 같지는 않다고 한다. 만나자마자 이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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