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규정과 완전히 다른 영상 속 해군 복장. 국가인권위원회 유튜브 화면 갈무리
[숨&결] 방혜린 | 전 군인권센터 활동가·예비역 대위
“나는 인권문제에 관심 있어”라는 말은 사람을 종종 투사로 보이게 하지만, 인권은 실상 그렇게 거창한 단어가 아니다. 인권이라는 게 결국 사람이 살아가며 필요하고 보장받아야 할 당연한 권리일 텐데, 거창할 게 뭐 있겠는가. 잘 먹고 잘 자는 것도 인권이고, 죽지 않고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인권이고, 성별과 상관없이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는 것도 인권이다. 그런 인권문제는, 살면서 너무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져서 그다지 신경 쓴 적 없는 아주 사소한 것에 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나는 인권문제에 관심 있다, 는 말은 곧 타인의 처지와 사회의 아주 사소한 부분에 눈길을 주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얘기다.
지난 1일,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이 출범했다. 인권위 상임위원 한명이 군인권보호관을 겸임하고, 20여명 규모의 군인권보호국이 신설돼 활동에 나선다. 관련 입법부터 출범까지 6년이라는 오랜 기간이 걸린 만큼 기대도 컸다. 그러나 며칠 전 게시된 출범 홍보영상을 보고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40여초짜리 짧은 영상 속에서 해군 여군은 함정 근무 중인데도 행사나 예식 때 입는 정복을 입고 있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려 했으나 영상 속 여군은 해군 복제에도 없는 넥타이를 착용하고 있었고 심지어 견장 모양은 완전히 달랐다. 제복에 붙어 있는 부착물 등은 말할 것도 없었고, 뒤에 서 있는 수병들 복장도 마찬가지였다. 에스엔에스(SNS) 등에 비판 댓글이 쇄도했고, 문제 영상은 수정했는지 현재는 검색되지 않는 상태다.
군인권보호관은 군대에서 사망한 장병들 목숨값으로 마련된 제도다. 군 외부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감시할 수 있는 옴부즈맨이 있어야 더는 피해가 은폐되지 않을 수 있다는 유족의 처절한 요구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2016년 입법 근거만 마련됐을 뿐 어디에 설치할지, 권한은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관련 부처끼리 6년간 떠넘기기를 하다 겨우 인권위가 받는 것으로 정리됐다. 그마저도 군 사망 사고 유족들이 국회 운영위원회로 찾아가 읍소하기까지 한 결과였다. 그런데도 군 사망 피해 유족들이 요구한 불시 부대방문 조사권 같은 권한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고, 피감기관인 국방부가 조사를 중단시킬 수 있는 여지도 남겼다. 국방부의 잦은 사건사고 은폐가 문제가 돼 도입된 제도가 군인권보호관인데, 정작 피해자가 아니라 국방부의 요구에 손을 들어준 셈이다. 법 개정은 나중에 하더라도, 입법과 설치가 우선이라는 위정자들과 관료들의 논리에 의해서다.
‘밀리터리 오타쿠’처럼 군인 복장 고증에 일일이 토를 달자는 게 아니다. 영상에서 채 몇초 차지하지도 않는, 그래서 실은 중요하지 않아 보일 수 있는 사소함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부대에 방문해 조사하려면 지휘관에게 사건을 통보해야 하고, 그마저도 장관에 의해 제약받을 수 있는 반쪽짜리 군인권보호관 제도라면, 최소한 대상에 대한 섬세한 관심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인권위는 군인권보호관 출범을 맞으며 ‘상시적인 감시를 통한 예방’에 중점을 두고 활동할 계획이라 밝혔는데, 간단한 검색 한번으로도 고칠 수 있는 오류마저 버젓이 홍보영상이라고 내보내는 와중에 과연 어떤 군인이 군인권보호관의 활동에 신뢰를 갖고 피해를 호소할 수 있을까. ‘뭘 제대로 알긴 아는 거야?’라는 의구심만 키우지 않을까.
지금도 인권위에 군 인권침해 피해사례 진정이 접수되면 처리에 1~2년이 걸린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전역한 뒤에야 진정 결과를 받아보는 게 현실이다. 그런 인권위가 군인권보호관 조직을 만들었다고, 온 부대를 돌아다니며 활약하는 암행어사 구실을 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작고 사소한 것부터 관심 둬 주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인권’을 ‘보호’하는 활동은 사망, 집단폭행과 같은 거창한 사건 이전에 사소함을 포착하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