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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미국은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에 왜 비협조적일까?

등록 2022-07-11 18:32수정 2022-07-12 02:35

[이제훈의 1991~2021] _32
2019년 8월엔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경의선 도라산역에서 열린 ‘파주 디엠제트(DMZ) 평화의 길 개방 행사’에 참석하는 김에 비무장지대 안 민간인 거주지인 대성동마을을 방문하려 하자, 유엔사는 “주민 불편”을 이유로 취재진의 동행을 불허했다. 대한민국 국무위원이 대한민국 국민이 사는 마을을 방문하면 ‘주민 불편’을 끼친다고 유엔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이 판단한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1953년 7월27일 오전, 윌리엄 해리슨 유엔군사령부 중장(왼쪽 책상 앉은 이)과 남일 조선인민군 대장(오른쪽 책상 앉은 이)이 정전협상장으로 쓰던 판문점 목조건물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다. 정전협정은 미국의 한반도 개입을 가능하게 하는 ‘최종 무기’다. 국가기록원 제공
1953년 7월27일 오전, 윌리엄 해리슨 유엔군사령부 중장(왼쪽 책상 앉은 이)과 남일 조선인민군 대장(오른쪽 책상 앉은 이)이 정전협상장으로 쓰던 판문점 목조건물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다. 정전협정은 미국의 한반도 개입을 가능하게 하는 ‘최종 무기’다. 국가기록원 제공

미국은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에 비협조적이(었)다. 조지 부시(2001~2008년)와 도널드 트럼프(2017~2020년) 등 공화당 집권기에 특히 심했다. ‘남북관계 진전은 비핵화와 속도를 맞춰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웠다. 비협조의 속내는 그보다 훨씬 근본적이다. 동북아시아 냉전 질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이 압도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정전체제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남북협력 가속화로 정전체제를 항구적 평화체제로 전환할 물꼬를 트느냐를 둘러싼 밀당이 본질이다.

남북을 오가는 철도·도로는 당연하게도 군사분계선(MDL)과 비무장지대(DMZ)를 관통해야 한다.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는 정전협정(1953년 7월27일)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정전협정은 유엔군사령관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 사이에 체결됐다. 대한민국은 서명 당사자가 아니다.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이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정전에 반대한 탓이다.

군사분계선은 정전협정에 따라 38선을 대체한 남북 경계선이다. 휴전선의 공식 이름이다. 서해안 강화에서 동해안 간성까지 155마일(약 250㎞)에 이른다. 땅 위에 선이 그어져 있진 않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일련번호를 매겨 세운 ‘군사표식물’ 1292개를 이으면 그게 바로 군사분계선이다.

군사분계선 남북으로 각각 2㎞까진 비무장지대다. 정전협정은 이 지역에 무장력의 상주를 금지해 완충지대로 삼았다. 그러나 실제론 남쪽 100여곳, 북쪽 280여곳의 감시초소(GP·지피)를 따라 병력·중화기가 밀집한 ‘중무장지대’다.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된 비무장지대는 한반도 전체 면적 22만1487㎢의 약 0.5%를 차지한다. 서쪽 예성강과 한강 어귀의 교동도에서 개성 남쪽의 판문점을 지나 동해안 고성의 명호리까지, 큰 강 6개를 건너고 평야 1개를 가로질러 산맥 2개를 타고 넘으며 70개 마을을 가둬두고 있다.

그러므로 남북을 잇는 철도·도로는, 정전협정의 주술에 걸려 70년째 ‘정지된 시간’과 ‘밀봉된 공간’에 갇힌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를 흔들어 깨우는 ‘평화회랑’이다. 그리스신화 속 시시포스의 투쟁과도 같은 남북의 지난한 철도·도로 연결 노력은 한반도 허리춤에 경의선(너비 250m)·동해선(너비 100m)이라는 두개의 숨구멍을 뚫었다. 아직은 너비 350m로 군사분계선 250㎞의 0.14%에 불과하지만, 그 작은 숨구멍으로 남북 8천만 시민·인민이 포기하지 않고 쉼없이 오간다면, 그리하여 오해를 이해로, 적대를 공존으로 바꿔 나간다면, 정전의 얼음벽은 평화의 봄바람에 시나브로 녹아내릴 것이다.

꿈은 창대한데 현실은 서럽다. 지금 그 350m 희망의 숨구멍으로 아무것도 오가지 못한다.

길이 보이지 않으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라 했던가?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이 합의한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사업을 현실화하자면 미국의 협조가 절실했다. 철도·도로 연결 공사를 하려면 정전협정 서명 주체인 유엔군과 조선인민군 사이에 비무장지대 관할권 이양 관련 합의가 전제돼야 해서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의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비협조로 일관했다. 럼스펠드는 주한미군사령관(=유엔군사령관)의 입을 빌려 “북한이 고농축우라늄계획(HEUP)을 추진하는 등 우려할 만한 상황인데도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을 꼭 추진해야 하겠느냐”고 한국 국방장관을 압박했다. 한·미 협의가 난항을 겪자 남북 군사 협의도 헛돌았다. 결국 청와대가 직접 나서 “철도·도로 연결 사업은 남북이 합의한 대로 반드시 추진하겠다. 미국 쪽은 지체없이 판문점 장성급 회담을 개최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합의된 날짜에 착공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고 임동원은 회고록 <피스메이커>에 적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동해지구와 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설정과 남과 북을 연결하는 철도·도로 작업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합의서”가 남북이 약속한 철도·도로 연결 공사 착공식 하루 전인 2002년 9월17일 가까스로 발효됐다.

미국은 청와대의 결연한 태도에 한발짝 물러섰으나 딴지걸기를 멈추지 않았다. 남북관리구역 경의선 통로의 지뢰 제거 작업이 마무리 단계이던 2002년 11월 미국은 북쪽의 지뢰 제거 작업이 ‘의심스럽다’며 상호 검증을 요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북쪽이 상호 검증에 동의해 검증 요원 명단을 남쪽에 통보했다. 미국은 “유엔사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북쪽이 직접 유엔사에 제출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다시 딴지를 걸고 나섰다. 이 일로 지뢰 제거 작업이 3주간 멈췄다. 남북이 가까스로 이 사태를 수습하자, 주한미군의 대표적 매파로 알려진 유엔군사령부 부참모장 제임스 솔리건 미 공군 소장이 2002년 11월28일 국방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금강산 육로관광을 위해 군사분계선을 월경할 때는 유엔사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한국군도 정전협정을 준수해야 한다” “정전협정이 준수되지 않으면 남북 교류협력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솔리건 소장의 ‘침대축구’에 가로막혀 철도연결공사 자재 대북 지원, 금강산 육로관광 등이 뒤로 밀렸다. 결국 남쪽이 북쪽을 설득해 “남북관리구역은 비무장지대의 일부이며 통행 승인과 안전 문제는 정전협정에 따라야 한다”는 문구를 남북부속합의서에 명시해 시빗거리를 해소하고 남쪽의 대통령 선거도 끝나자 미국의 트집잡기가 잦아들었다.

이런 일련의 논란을 두고 당시 <한겨레>는 “현재는 군사분계선 통과 문제로 비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문제까지를 포함한 복잡한 사안”이라고 짚었고, 임동원은 <피스메이커>에 “만일 우리가 굴복했다면 남북관계는 다시 한번 파탄나고 6·15 공동선언은 백지화됐을지 모른다”고 적었다.

정전협정을 근거로 비무장지대 관할권(jurisdiction)을 고수하려는 미국 쪽의 집착은 세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평화의 산들바람이 분 2018년 즈음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은 ‘제9차 한-독 통일자문위원회’(2019년 6월12~13일 강원도 평창) 계기에 강원도 고성 비무장지대 안 ‘829보존지피(GP)’를 독일 정부 대표단한테 보여주려던 통일부의 계획을 “안전상 이유로 불허”했다. 당시 서호 통일부 차관이 에이브럼스 사령관한테 항의서한까지 보냈으나 유엔사는 어떤 ‘안전상 이유’가 있는지 끝내 설명하지 않았다. ‘829보존지피’는 비무장지대 남북 군사 대치의 증거인 감시초소를 ‘9·19 군사합의’(2018년 9월19일)에 따라 철거한 사실을 기념하려고 영구 보존하기로 한 곳이다.

2019년 8월엔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파주 디엠제트(DMZ) 평화의 길 개방 행사’(8월9일 경의선 도라산역)에 참석하는 김에 비무장지대 안 유일한 민간인 거주지인 대성동마을을 방문하려 하자, 유엔사는 “주민 불편”을 이유로 취재진의 동행을 불허하는 ‘침대축구’를 되풀이했다. 대한민국 국무위원이 대한민국 국민이 사는 마을을 방문하면 ‘주민 불편’을 끼친다고 유엔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이 판단한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논란의 대상인 유엔군사령관의 ‘군사분계선 통과와 비무장지대 출입 허가권’(이하 허가권)은 정전협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정전협정은 허가권의 범위·절차를 따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협정의 목적과 효력 범위를 서언에 명시했다. “한반도에서 적대 행위와 일체 무력 행위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이며 “정전 조건과 규정의 의도는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이다. 전쟁의 재발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춘 정전협정은 남과 북이 비무장지대를 평화적으로 활용하고 화해협력을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다.

유엔사 설치 근거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84호(1950년 7월7일)는 1항에서 “방어를 위한 한국 지원과 국제평화와 안보 회복”이 목적이라 명시했다. 유엔사 권한의 전제다.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유엔사에 ‘이양’한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의 공한(1950년 7월14일)도 “적대 행위가 계속되는 동안”으로 한정했다. 따라서 유엔사 허가권은 ‘적대·무력 행위 방지를 위한 군사적 성질’에 관한 일로 한정됨이 마땅하다.

이제훈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1993년 한겨레에 들어와 1998년부터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사업의 시작과 중단, 다섯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여섯차례의 북한 핵시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3세 승계’, 두차례 북-미 정상회담, 사상 첫 남·북·미 정상회동 등을 현장에서 취재·보도해왔다. 반전·반핵·평화의 한반도와 남북 8천만 시민·인민의 평화로운 일상을 꿈꾼다.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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