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박복영 | 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세계 경제가 불안에 휩싸여 있다. 정부는 복합위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한다.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진앙지는 미국이다. 인플레율이 가파르게 치솟으며 40여년 만에 최고 수준인 8%대에 이르자, 중앙은행인 연준이 이를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있다. 보통은 한번에 아기 걸음(0.25%포인트)처럼 조금씩 올리지만 지금은 거인 걸음(0.75%포인트)처럼 성큼성큼 올리고 있다.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렇게 금리를 급격히 올리니 자금 이동도 빨라졌다. 주식, 가상자산, 부동산 같은 위험자산에서 채권, 예금 같은 안전자산으로 이동하고, 불안한 신흥시장에서 빠져나와 안전한 달러로 이동한다. 그래서 주가와 부동산 가격은 떨어지고 환율은 올라간다. 물가와 금리 상승 때문에 소비와 투자가 위축돼 곧 불황이 닥칠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졌다. 자산 가격과 자금 이동 급변으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복합위기다. 인플레는 이미 왔지만 아직 불황과 금융위기가 온 것은 아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일부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문제를 조금 더 어렵게 만든 요인일 뿐이다. 근본적 문제는 코로나 이후 시장에 돈이 넘치면서 시작된 이른바 ‘유동성 파티’가 끝났기 때문이다. 유동성 파티는 세상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었고 모든 것을 실제 이상으로 낙관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디지털 기술은 유니버스와 비견되는 메타버스를 만들 것 같았고, 블록체인 기술은 수천년 된 화폐 시스템마저 대체할 것 같았다. 좋은 집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어 집값은 계속 오를 것 같았다.
유동성 과잉 시대에 기술혁신은 늘 그 효능이 과잉 해석되고, 투기 수요로 인한 가격 상승은 공급 부족으로 정당화된다. 17세기 네덜란드가 튤립의 아름다움에 취했을 때도, 1990년대 말 인터넷 기술에 매혹됐을 때도,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융기법의 마술에 빠졌을 때도 그랬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런 버블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빈발하는 기술혁신과 경제의 금융화가 빚은 결과다. 버블은 기술낙관주의와 유동성 양쪽의 과잉이 결합해 발생한다.
이번 인플레와 경제불안이 증폭된 데는 미국 정책당국의 판단 착오도 큰 몫을 했다. 좀 더 일찍 유동성 흡수를 시작했더라면 세계 경제는 더 부드럽게 연착륙하고 물가 상승폭도 작았을 것이다. 코로나가 발생해 경제가 멈추자 미국 연준은 약 5조달러의 유동성을 쏟아부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2배 이상이다. 하지만 코로나 충격에서 경제가 회복되는 속도는 과거보다 훨씬 빨랐다. 지난해 초 백신 접종이 진행되자 이내 사람들은 물건을 사고 여행을 가고 직장으로 돌아왔다. 실업률은 빠르게 떨어졌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인력 부족이 문제였다. 인플레율은 지난해 6월 이미 5%를 넘었고 연말에는 7%가 되었다. 그때도 연준은 계속 돈을 풀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에 인플레율은 이미 8% 턱밑까지 올라왔다. 그때서야 연준은 처음으로 금리를 인상했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제는 거인의 발걸음마저 느리게 보인다. 아마 미국 통화정책 역사상 최대 실수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우리는 지난해 8월부터 꾸준히 금리를 인상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미 정책당국은 왜 잘못된 판단을 했을까? 연준이 금리 인상을 주저한 데는 과거 금융위기 대응에서 잘못된 교훈을 얻은 것도 작용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했지만 경기 회복은 느리고 인플레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금리 인상을 최대한 늦췄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 때는 달랐다. 백신 접종으로 수요 회복은 빨랐지만 멈췄던 공급망은 금세 정상화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대응은 예전처럼 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바이든 정부 출범 직후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이었다.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인플레 신호가 나타나고 있는데도 2조달러 이상의 재정부양책을 내놓았다. 집권 초기 지지도 유지를 위한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다.
두달 전 윤석열 정부의 60조원 추경도 비슷했다. 결과는 인플레였다. 경제 상황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적기의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준다. 우리가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넘기느냐도 결국 우리 정부의 능력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