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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도어스테핑은 애드리브가 아니다 [권태호의 저널리즘책무실]

등록 2022-07-13 19:06수정 2022-07-14 15:02

윤석열 대통령은 도어스테핑을 기자들에 대한 ‘서비스’로 인식하는 듯하다. 그래서 묻는 말에 애드리브를 한다. 오히려 리스크가 커진다. 매일 아침 대통령을 접하는 도어스테핑은 단연 진일보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이라 했다. 그러면 준비 없이 서선 안 된다.

권태호 | 저널리즘 책무실장 겸 논설위원

“뭐 물어볼 거 있으면 물어봐요. 한개만 하고 들어갑시다. (코로나 방역?) 내가 어제요, 질병(관리)청장하고, 그리고 저 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회 위원장님하고, 또 (보건)복지부 차관 이런 분들 여기 와서 회의를 했는데, 내일 아마 총리 주재로 중대본 회의가 열릴 겁니다. 거기서 뭐 기본적인 방침을 발표할 겁니다. (전날 추경호 부총리에게 당부한 부분?) 중요한 건 서민들의 민생이 경제위기로 타격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하는 거니까. 오늘 너무 많이 묻는데? 여러분들 모두 (코로나) 조심하세요.”

‘도어스테핑’ 중단을 밝힌 12일 아침, 윤석열 대통령의 용산 출근 장면이다. 표정이 밝다. 본인 말처럼 지지율 하락에 연연치 않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다만 당황스러울 만큼 ‘내용’이 없다. 대통령에 대한 질문이 구체적인 국정 정보를 얻기 위한 건 아니지만, 과하게 표현하면 ‘오늘은 무슨 말 하나’ 들여다보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 같다.

용어 정리를 하면, 도어스테핑(doorstepping)이란 ‘잠깐 서서 하는 약식 회견’으로 통용되기도 하지만, 본래는 집 앞 계단에 서서 마주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기자의 행위를 뜻한다. 따라서 도어스테핑은 대통령이 아닌, 기자가 하는 것이다. 속어 ‘뻗치기’를 고급스레 포장한 말이기도 하다.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영국 총리 관저, 도쿄 지요다구 일본 총리 관저에는 출퇴근 시간에 방송 카메라와 기자들이 대기해 있다. 이를 그대로 도입하면, 용산 아닌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앞에 진 치고 있어야 한다.

이번 도어스테핑 중단은 대통령실 기자단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9명이나 나온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다들 ‘이 핑계로’ ‘일단 멈춤’ 하고픈 대통령실 바람이라고 본다. 그런데 정작 대통령은 그만두고픈 마음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무성의하다. <동아일보> 디지털뉴스팀이 5월11일부터 7월8일까지 24차례 도어스테핑을 조사해 10일 보도한 내용을 보면, 윤 대통령이 가장 많이 쓴 단어는 “글쎄”(52회)다. “하여튼”이 10회인 것도 눈에 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과거 윤 대통령을 사석에서 접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게 두가지다. ‘그렇게 술 많이 마시는 사람은 태어나 처음 봤다’와 ‘대화 90%는 혼자 다 말한다’이다. 검사 시절에도 기자들을 꺼리지 않고, 친한 기자들과는 2시간가량 얘기를 나눌 때도 적지 않았다. 과거 검찰에는 ‘티타임’이라는 게 있었다. 주요 사건이 있을 때, 검찰청 차장검사가 기자들과 매일 간략한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다. 스무고개 머리싸움이나 선문답이 오갈 때도 많지만, 가느다란 실마리를 찾아 기사를 쓴다. 만일 윤 대통령이 검찰에서 이런 ‘티타임’ 경험이라도 제대로 쌓았다면, 도어스테핑이 그래도 지금보단 조금이라도 낫지 않았을까. 윤 대통령은 지청장 시절 국가정보원 정치개입 수사로 4년간 지방고검을 떠돌다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초고속 승진해 이 과정을 건너뛰었다. 그러다 보니 사석에서 좌중을 휘어잡는 거침없는 스타일만 남았다. “전 정권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7월5일), “민주당 정부 때는 안 했습니까?”(6월17일), “과거엔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하지 않았습니까?”(6월8일) 등이 그 결과다. 국민 앞에 외람되고 무람없다.

도어스테핑은 미국, 영국, 일본, 캐나다 등 여러 나라에서 실시된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먼저 기자들을 부르기도 한다. 지난해 지바현 지진 때는 새벽 1시10분에, 또 주요 사안이 있을 때는 밤에도 관저 앞에 나선다. 국정을 신속히 알리고, 위기 때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등 선제적 리스크 관리 수단으로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2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관저 로비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도쿄/교도 연합뉴스
지난해 12월2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관저 로비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도쿄/교도 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7일(현지시각)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관저 앞에서 보수당 대표직 사임을 발표하고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7일(현지시각)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관저 앞에서 보수당 대표직 사임을 발표하고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도어스테핑을 기자들에 대한 ‘서비스’로 인식하는 듯하다. 그래서 묻는 말에 애드리브를 한다. 애드리브는 통찰력에 바탕한 고도의 전략과 감각이 필요한 영역이다. 관객 반응에 대한 고민이 깊지 않으니, 본인 생각에 ‘예상외 결과’가 계속 나온다. 오히려 리스크가 커진다.

장관들이 도열한 채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처럼 지루하게 이어지던 박정희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에서, 순서와 문답이 미리 짜여 연극처럼 펼쳐지던 박근혜 대통령 때,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던 문재인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지나, 매일 아침 대통령을 접하는 도어스테핑은 분명 진일보했다. 그러나 훈련 삼아 월드컵 참가하는 선수 없듯, 도어스테핑을 경험 쌓는 자리로 만들 순 없다. 윤 대통령은 도어스테핑을 “국민과의 약속”이라 했다. 그러면 준비 없이 서선 안 된다. 국민에 대한 예의다.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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