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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얘들아 나도 밥 좀 먹자

등록 2022-07-20 18:35수정 2022-07-21 02:09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F·Barrier Free)’ 인증 확대를 알리는 캠페인이 지난 4월19일 오후 서울역 앞 계단에서 열려 비에프 스티커가 계단에 붙어 있다. 김태형 기자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F·Barrier Free)’ 인증 확대를 알리는 캠페인이 지난 4월19일 오후 서울역 앞 계단에서 열려 비에프 스티커가 계단에 붙어 있다. 김태형 기자

[숨&결] 유지민 | 대안학교 거꾸로캠퍼스 학생(고1)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학창 시절 가장 큰 고민거리는 무엇이었나? 성적, 교우 관계, 선생님과의 갈등, 진로? 그런데 혹시 ‘오늘 점심을 먹을 수 있을지’ 걱정해본 적 있나? 장애 학생들은 요즘에도 실제로 ‘점심권'을 침해당한다.

나는 올해 일반 고등학교 대신 대안학교 ‘거꾸로캠퍼스'에 입학했다. 등교 첫날, 오리엔테이션에서 친해진 친구가 점심을 먹고 돌아와 나에게 “지민아, 네가 점심 먹는 게 힘들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우리 학교는 본 학교 건물의 규모가 작아 모든 학생이 학교 밖 별도 장소에서 급식을 먹는다. 급식을 제공하는 식당에 휠체어 접근이 불가하다는 얘기는 어렴풋이 들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장애인 친구가 먼저 그렇게 이야기를 꺼낼 정도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걱정됐다.

식당은 지하에 있었다. 입구에 큰 턱이 있었고 내려가는 계단은 생각보다 더 좁고 길고 가팔랐다. 비장애인이 걸어 내려갈 때도 주의해야 하는 곳에서 휠체어를 들어 옮긴다는 선택지는 존재할 수 없었다. 주변 친구들에게 부탁할 수도 없었다. 매일 점심때마다 누군가에게 안겨 계단을 오르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미인가 학교라 교육청에 엘리베이터 설치비를 요청할 수도 없었다. 진퇴양난이었다.

엄마가 수소문해 휠체어째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보조기기를 빌려 왔다. 그러나 이 기기는 한번도 제대로 쓰이지 못했다. 기기에 비해 계단이 너무 좁았다. 비장애인이 뒤에서 체중으로 지탱하는 구조였는데, 경사가 가팔라 위험했다. 기기를 체험하고 온 할머니께서 “삐끗하면 누구 하나 크게 다칠 수도 있겠다”고 말씀하셨다.

기기를 빌려 시연한 일주일 동안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학교생활에서 점심시간은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 학교는 팀 프로젝트 수업이 많아 점심시간이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학교에서 밥을 먹어야만 할까? 그 일주일 동안은 혼자 집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점심시간에 돈독히 어울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대화에 참여할 수 없었던 점도 걸렸다. 평소 외출했을 때 접근성이 낮아 식당에 가지 못하는 일이 자주 있긴 하지만 학교에서 급식을, 같은 문제로 먹지 못하는 것은 훨씬 심각한 문제다.

엄마는 근처 장애인 야학에서 점심식사를 제공한다는 걸 알아내고 선생님들에게 우선 알렸다. 나 하나를 위해 기존 식당과 계약을 종료하고 급식 식당을 옮기기는 어려울 거란 게 엄마의 짐작이었다. 그런데 3개월 뒤 학교는 파격적으로 아예 전체 식당을 이곳으로 옮겼다. 알고 보니 선생님들도 주변에 다른 식당을 샅샅이 찾아다니고 계셨단다. 나로서는 굉장히 감사했지만, 학교가 이런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은 극히 드물 것 같다. 한편으로는 더는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되니 친구들로서도 상황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사실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점심권’에 장애, 비장애가 따로 있진 않다. 생각해보니 내가 엘리베이터가 없는 사립학교 진학을 지레 포기했던 것처럼, 많은 장애 학생들은 입학 전부터 교육 기본권을 침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고교생 약 1200명이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등편의법)에 따라 사립학교 내 편의시설 설치 의무화 성명을 냈고, 나도 이에 참여했다. 장애 학생뿐 아니라 비장애 학생도 다리 골절 등 일시적 장애를 겪을 수 있는데, 편의시설이 없다면 교육권이 침해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문제는 학생 개개인이 나서서 해결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장애 학생의 교육 기본권이 침해받는 것에 더 많은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장애 학생들도 맘 편히 ‘오늘 점심엔 뭐가 나오지?' 같은 평범한 고민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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