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산호초를 따라서>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이현석|소설가·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지난해 초 한 문예지에서 진행한 환경 관련 좌담에 참여했다. 당시 참여자들이 공유했던 공통 텍스트는 다큐멘터리 영화 <산호초를 따라서>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잠수부와 과학자는 기후변화로 죽어가는 산호초를 렌즈에 담았는데, 수온 상승으로 산호초 군락이 백화(白化)된 모습은 참여자들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영화 말미에는 시차를 두고 같은 산호초 군락을 찍은 화면이 교차한다. 절반으로 나뉜 화면 한쪽에서 생동하던 산호초가 다른 쪽에서는 하얗게 죽어 있다. 우리는 이 장면을 두고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것이 미래의 일이 아니라 당면한 일임을 알리는 강렬한 이미지 말이다.
문제는 백화현상이라는 이미지가 아무리 강렬할지라도 인구 대다수인 도시 거주자는 대체로 잠수부가 아니며, 열대 해안지역에 살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도시인과 산호초 영상 사이에는 결코 붙을 수 없는 이격이 생긴다. 널리 알려진 기후위기의 이미지들, 그러니까 빙하가 녹아내리는 영상이나 수온 상승으로 집단 폐사한 물고기, 기후변화로 멸종한 최초의 동물인 황금두꺼비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도시인 일부를 자극할 수는 있으나 폐부까지 찌르지는 못한다.
이런 공감 격차가 생기는 이유를 두고 아이슬란드의 환경운동가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은 저서 <시간과 물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시에는 죽음이 없다. 동물원의 모든 동물이 살아 있다. 공원은 정돈되어 있고 농장에서도 사체는 보이지 않는다. 상점은 고기로 가득하나 죽음을 연상시키지는 않으며, 어떤 동물의 고기인지도 알기 어렵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을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도시의 속성인바, 추하거나 불순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풍경에서 삭제된다.
그런데 며칠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도시 중 하나인 런던에서 일군의 의료인이 도시의 깔끔한 정경에 균열을 낸 사건이 발생했다. 그들은 임상심리사, 간호사, 산부인과 의사, 정신과 의사 등으로 영국 기상관측 사상 최악의 더위로 기록될 7월19일을 이틀 앞두고 제이피모건 사옥에 모여 1층 유리창을 깨트렸다. 제이피모건이 파리기후협정 이후에도 화석연료에 4000억달러 가까이 투자한 최대의 자금조달처이기 때문이다. 시위에 참여한 치매전문 간호사 매기 페이는 경찰에 체포되기 전 이렇게 말했다. “치명적인 폭염은 (거동이 불편한) 치매 환자들부터 죽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자리에 섰다. 내 직업의 행동강령에는 ‘환자의 안전이 위험에 처한다고 판단될 시 지체 없이 행동하라’고 명시되어 있다. 바로 그 위험이 지금 여기에 있다.”
의학저널 <랜싯>에 실린 메타분석 연구 결과를 보면 폭염은 뇌졸중과 심부전 위험을 증가시킨다. <네이처>에도 기온 상승이 자살률 증가와 관련성을 보인다는 보고가 발표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해 9월에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앞두고 220개의 의학저널이 공동의 목소리를 냈다. 주요 저널의 편집장들이 함께 쓴 사설은 지난 20년간 기후위기로 노인 사망률, 탈수, 신부전, 피부암, 감염병, 정신질환, 임신 합병증, 알레르기, 심혈관 및 폐 질환이 증가했음을 힘주어 말한다.
그러므로 도시인이 기후위기를 피부로 느끼게 할 하나의 이미지는 진단명의 기나긴 목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기후위기에 의한 뇌졸중, 기후위기에 의한 피부 기저세포암, 기후위기에 의한 주요우울장애, 기후위기에 의한 쓰쓰가무시 감염증, 기후위기에 의한 급성신부전… 아마도 끝없이 이어질 이 목록의 세목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곁에서 작성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