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이은주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10년평가위원회 주관 ‘존망의 기로, 정의당을 말하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지방선거 참패 이후 정의당은 당의 진로와 혁신을 둘러싼 토론을 벌이고 있다. 쟁점은 이념과 노선에서 일상 활동까지 참으로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하지만 유독 한가지 중대한 쟁점만은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전세계 모든 좌파 정당이 숙명처럼 씨름해온 오래된 난제, 개혁과 혁명의 문제다.
사실 정의당에 이는 그리 심각한 고민거리는 아니었다. 이제껏 여러 진보정당이 있었지만, 정의당만큼 창당할 때부터 오직 개혁만을 선명히 내세운 정당도 없었다. 이전 진보정당들은 강령에서 단지 수사로라도 개혁을 넘어선 사회변화 경로를 언급했지만, 정의당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런 만큼 정의당은 얼마나 실질적인 개혁 성과를 내느냐로 평가받아야 할 정당이었다.
그러나 이제까지 결과는 어떠한가? 정의당이 당력을 모아 추진한 개혁 과제 가운데 제대로 실현된 것은 하나도 없다. 대표적으로 두가지 사례가 있다. 하나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이고, 다른 하나는 공직선거법 개정이다. 겉으로만 보면, 둘 다 어느 정도 성과를 낸 것처럼 보인다.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됐고, 국회의원 선거제도도 바뀌었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단서 조항을 덕지덕지 단 채 처벌을 ‘유예’하는 법이 돼버렸고,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등장한 것은 전세계에 유례가 없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기이한 제도다.
둘 다, 제6공화국 정치를 반분하는 양대 정당의 공동 창작물이다. 이 경직된 정치지형에서 국민의힘은 개혁을 완강히 가로막는 장벽 노릇을 하며,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핑계로 개혁의 실질적인 내용을 삭제하거나 변질시키는 신묘한 능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늘 ‘개혁’ 뒤에 남는 것은 개혁을 바라던 이들의 실망과 피로감뿐이다.
창당 이후 지금까지 정의당은 더불어민주당 쪽을 어떻게든 움직여 개혁 입법을 관철하려고 했지만, 그 결과가 이러하다. 그렇다면 정의당이 노선과 전략을 새롭게 다지면서 반드시 따지고 넘어가야 할 물음은 이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개혁은 과연 가능한가? 만약 개혁이 가능하지 않다면, 이 사회를 변화시킬 방도는 그럼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경험을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는다면, 제6공화국 질서 아래에서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교과서에 나오는 입법 절차를 통해 진지한 변화를 이뤄나간다는 것은 자본주의를 일거에 뒤바꾸자는 대문자 혁명을 부르짖는 것만큼이나 공상적이다. 그렇다면 사회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개혁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도 개혁을 넘어서는 전망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경우에 이는 바로 제6공화국 질서를 넘어서자는 운동이다. 기후위기와 불평등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늙은 질서를 파기하고 제7공화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자면 양당 독점정치를 지탱하는 정치제도들을 바꿔야 하고, 기후위기와 불평등위기에 맞서기 위해 사회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국가체제를 갖춰야 한다. 그리고 이런 새 질서를 수립하는 과정 자체가 시민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 이제 진보정당은 이러한 탈-제6공화국 운동 혹은 제7공화국 수립 운동의 촉매가 돼야 한다. 이것은 과거와 같은 대문자 혁명은 아니지만, 부분적이고 파편적인 개혁에 비하면 훨씬 단절적이고 구조적인 혁명에 가까운 전망이다.
물론 그렇기에 이는 당장 실현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에서 동떨어졌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처방이다. 탈-제6공화국 운동 같은 흐름이 일정하게 성장할 때에만 철옹성 같던 양당 독점정치도 흔들리기 시작할 테고, 그래야 막혀 있던 개혁입법의 물꼬 또한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즉, 개혁을 넘어서는 전망과 실천이 함께할 때에만 개혁 역시 실현될 수 있다. 이러한 개혁과 혁명의 상호작용이 지금 진보정당운동의 긴급한 의제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