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준 본부에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연준은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지난 6월에 이어 두 달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75% 포인트 올리는 것)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미국 기준금리는 기존 1.50~1.75%에서 2.25~2.50%로 상승, 한국 기준금리(2.25%)보다 높아졌다. 워싱턴/AP 연합뉴스
[한겨레 프리즘] 한광덕 | 경제팀장
해마다 8월 말이 다가오면 미국 와이오밍주 휴양지 잭슨홀을 주목한다. 미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이 주최하는 경제포럼 ‘잭슨홀 회의’에는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와 경제학자들이 참석한다. 사흘 일정에 금요일이 들어 있지만 외환시장 트레이더들은 일찍 퇴근할 수 없다. 향후 통화정책에 관한 발언이라도 나오면 시장이 크게 요동치기 때문이다.
2년 전 잭슨홀 원격회의에서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평균물가목표제’(AIT) 도입을 공식화했다. 이 새로운 통화정책은 ‘고용은 더 강하게, 물가는 더 유연하게’로 요약된다. 우선 물가상승률이 지속해서 목표치인 2%를 밑돈다면 평균 2%에 이를 때까지는 물가가 2%를 웃돌더라도 용인해주기로 했다. 예를 들어 올해 물가가 2.5% 상승이 예상되지만 지난해 물가가 1%밖에 안 올라 평균으로는 2%에 못 미치니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연준을 40년 넘게 움직여온 통화정책의 틀을 깨는 중대한 변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리던 중앙은행이 물가를 우선적인 목표에서 내려놓았다는 해석이다. 연준은 의회(법률)가 부여한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이라는 이중 책무 아래 통화정책을 운영해왔다. 2차 석유파동으로 두자릿수 물가상승률에 고통받던 1979년 연준 의장이 된 폴 볼커는 고강도 긴축정책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을 진압했다. 이후 물가가 상승 조짐을 보이면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는 게 연준의 관성이 됐다. 그랬던 연준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인플레 파이터’에서 ‘디플레 파이터’로 변신한 것이다.
파월 의장은 당시 잭슨홀 연설에서 통화정책 결정 기준을 완전고용 수준의 ‘이탈’에서 ‘부족’으로 바꾼다고 밝혔다. 전에는 완전고용을 초과해도 위험요인으로 고려해 긴축을 단행했다면, 이젠 완전고용에 못 미치는 상황에만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고용시장이 과열돼도 물가가 과도하게 오르지 않는다면 연준이 긴축에 나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통화정책의 무게중심을 물가에서 고용으로 옮긴 것이다. 코로나19로 미국에서 수백만명이 일자리를 잃은 탓이다. 고용충격은 저소득층 일자리에 집중됐다. 연준은 취약계층에도 온기가 퍼지는 고용시장 지원을 내세웠다. 파월 의장은 “강한 노동시장이 특히 중·저소득 계층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업률이 낮아지면 물가가 오른다는 전통적인 공식(필립스 곡선)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도 정책 전환에 힘을 실어줬다. 미국 실업률은 코로나 대유행 전 역대 최저 수준이었지만 물가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그로부터 1년 뒤 물가는 물론 집값이 급등세를 보였다. 하지만 잭슨홀 화상회의에서 파월은 자산매입 축소(테이퍼링)의 연내 착수를 시사하면서도 금리인상이 곧 뒤따를 것이라는 신호로 해석해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완전고용까지는 갈 길이 멀고 인플레이션 압력은 ‘일시적’이라는 판단을 고수했다.
올해 잭슨홀 회의는 오는 25~27일(현지시각) 대면으로 열릴 예정이다. 파월은 2년 전 잭슨홀에서 평균물가목표제가 “시간이 지난 뒤에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시장에서는 적어도 2023년까지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없을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올해에만 기준금리는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을 포함해 이미 네차례 올랐다. 2년도 안 돼 인플레 파이터로 돌아간 셈이다. 물가 선제적 대응을 미룬 대가가 너무 컸다.
지금 연준의 대응도 뒷북이라는 평가가 많다. 파월은 물가에 대해 명료한 하락이 필요하다고 했다. 향후 물가 흐름을 전망하기보다 물가 하락이 수치로 확인될 때까지 공격적 긴축을 이어나가겠다는 뜻이다. 백미러만 보며 운전한다는 비유가 나오는 이유다. 시장은 이미 물가보다 경기침체에 대비하고 있다. 연준은 다시 ‘신뢰의 위기’에 봉착했다. 파월은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k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