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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4·3 재심재판에 관심과 응원을

등록 2022-08-23 18:10수정 2022-08-24 02:37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지석. 허호준 기자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지석. 허호준 기자

[전국 프리즘] 허호준 | 전국부 선임기자

격주 화요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는 머리칼이 하얗게 센 노인들이 찾아온다. 증언석에 앉은 이들 가운데는 지팡이를 짚은 이도, 보청기를 끼거나 휠체어를 타고 자녀들의 부축을 받고 온 이들도 있다. 방청석은 재판 때마다 가득 찬다.

제주4·3 군사재판 수형인 ‘직권재심’ 재판 현장이다. 법정에서는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의 입을 통해 70여년 전의 진실을 전한다. 아내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자녀들이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제사를 지내는 조카들이 삼촌과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재판은 당시의 진실을 드러내기에 그치지 않는다. 법정은 유족들의 고통과 한도 풀어내는 자리다. 당시 핏덩이였던, 이제는 70대 중반이 넘은 자식들은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지난 세월을 이야기한다. 한 유족은 어릴 때 ‘폭도 새끼’라고 놀림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당시 7살이었던 80대 할머니는 동생들과 ‘지옥과도 같은 삶’을 살았다며 흐느꼈다. 아버지의 성을 쓰지 못해 어머니 성으로 살아온 사연도 있었고, 아버지가 내란죄 혐의로 군사재판을 받았다는 사실을 법정에서 처음 알게 됐다는 유족도 있었다.

2020년 하반기부터 개별적으로 진행되던 4·3 수형인 재심재판은 지난해 개정된 제주4·3특별법에 ‘직권재심’ 조항이 신설돼 검찰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확대됐다. 최근에는 법무부가 당시 일반재판 희생자들에 대한 직권재심도 검토하기로 했다.

4·3 관련 재심재판은 규모나 성격상 우리 사법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재판이다. 법정은 국가 공권력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민주주의와 인권,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재판은 지난 3월 구성된 4·3전담재판부가 담당한다. 과거사 관련 재심재판을 위해 법원이 전담재판부를 구성한 것도 이례적이다. 재판장인 장찬수 부장판사는 4·3 재심사건을 맡게 되면서 그동안 피상적으로 알았던 역사와 마주했다. 지난 3월 첫 직권재심 재판 때는 “긴장해서 잠을 설쳤다”고 말할 정도였다. 4·3 관련 연구서와 논문 등을 찾아 읽고, 전문가들을 만나며 4·3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광주고검 산하 제주4·3사건직권재심권고합동수행단(단장 이제관) 소속 변진환 검사는 “유족들이 고령인 점을 고려해 정확성과 신속성을 기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이념과 공권력의 이름으로 불법행위가 자행됐고 유족들은 통한의 세월을 보냈다”는 말로 유족들의 아픔에 공감했다.

재판부는 재판 때마다 유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기회를 준다. 무죄 선고에 유족들이 “고맙다”고 하면, 재판부는 “고맙다거나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 국가가 미안해해야 한다”는 말로 유족들을 위로하거나 자신의 소회를 밝히고 있다.

지난 9일 재심사건 재판을 방청하기 위해 법원을 찾은 고교생들에게 장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70여년 전 제주도민은 제대로 된 절차도 없이 졸속 재판으로 엄청난 희생을 당했다. 남은 유족들 역시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살았다. 희생자와 유족들의 한과 응어리를 법정에서 풀어드리는 것이 저의 소임이다.”

4·3 군사재판 수형인들은 1948년 12월과 1949년 7월 졸속 군사재판을 받고 다른 지방 형무소에서 수형생활을 한 이들로, 이들 대부분은 한국전쟁 발발 뒤 행방불명됐다. 1999년 정부기록보존소(현 국가기록원)에서 발굴한 ‘수형인 명부’를 보면, 당시 군사재판을 받은 이는 2530명(사형 집행 280여명 포함)이다.

지난 3월 직권재심 도입 이후 지금까지 250명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2020년 하반기부터 직권재심 도입 이전까지는 개별 청구를 통해 350명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일반재판 희생자들의 재심까지 고려하면 수년이 걸릴 전망이다. 4·3 재심재판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이유이다.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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