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 동안 서울 학생 687명이 농촌 유학을 희망했다. 학생들은 씨앗부터 열매까지, 농작물이 언제 어떻게 자라는가를 제 손으로 키우며 터득한다. 때에 맞춰 우는 새와 날고 기는 곤충과 내리는 비와 내리쬐는 햇볕 역시 오감으로 느낀다. 만물과 교감하는 생태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현장이다.
섬진강 들녘 위의 독수리 연들. 마을 이웃 제공
김탁환 | 소설가
독수리연(鳶) 열두개가 먼저 보인다. 허수아비 대신 참새들을 쫓기 위해 장대에 높이 매단 독수리의 날개가 바람에 흔들린다. 비슷한 것은 가짜라고 했던가. 100여종 벼 중에서 이미 나락이 팬 적진주찰에 스무마리가 넘는 참새들이 벌써 앉았다. 참새가 특히 좋아하는 품종이다. 나보다 먼저 초등학생들이 손뼉 치며 고함 지른다. 훠이 훠어이! 새 쫓는 소리가 카랑카랑 맑다.
‘전환’(轉換)이라는 단어가 유행어처럼 자주 등장한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소설가인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렸을 때, 용감한 등장인물은 더 용감해지고 비겁한 등장인물은 더 비겁해진다. 20년 넘게 대도시의 소설가로 살다가 전라남도 곡성군 섬진강 들녘으로 집필실을 옮긴 지도 1년 반이 지났다. 이 변화를 이끈 결정적인 계기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다.
서울에서 농촌 유학을 온 초등학생들을 처음 만난 때는 지난해 5월이었다. 두 가족이 손모내기 체험에 참여했는데, 아버지는 서울에 있고 어머니와 아이만 곡성으로 유학 왔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과 전라남도교육청이 업무협약을 맺고 실시한 농촌 유학 프로그램 참가자들이었다. 서울에 있어 봤자 코로나 때문에 학교도 못 가니, 대면 수업이 가능한 농촌에서 반년이나 1년쯤 지내고 싶어 내려왔다는 것이다.
개개인이 결단해 대안교육을 찾고 농촌으로 거처를 옮기는 경우는 예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교육청 두곳이 생태전환교육을 위해 힘을 합치고 법과 행정과 재정까지 검토해 새로운 길을 모색한 것은 처음이다. 지방에서 서울, 국내에서 국외로 가던 유학의 흐름을 반대로 돌린 것이다. 이 방향전환에 대해 거칠지만 본질적인 질문이 날아들 법도 하다. 서울 대도시를 떠나 지방 농촌으로 가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올봄 내가 맡은 이야기학교 강의실에서 특별한 수강생 두명을 만났다. 10주 동안 매주 수요일 저녁 곡성군민을 위해 마련한 글쓰기 과정에 농촌 유학생 학부모 두명이 참석한 것이다. 그들의 글을 통해 농촌 유학생뿐만 아니라 함께 온 학부모의 일상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학부모들에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소박하지만 값진 삶의 여유였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방과후 활동을 하는 동안, 학부모들은 산과 강과 들녘을 거닐기도 하고, 철 따라 열리는 마을 활동에 참여하기도 하고, 군에서 마련한 각종 취미생활을 즐기기도 했다. 서울에서는 내 자식 교육에만 신경 썼는데, 이곳에 와선 논밭과 마을과 자연환경까지 관심의 폭이 넓어졌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지방 농촌에선 서울 대도시의 삶을 안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도시 문명을 접하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그러나 서울 대도시에선 지방 농촌의 지혜와 고통과 즐거움과 울분을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곡성 죽곡초등학교 텃밭수업 중, 텃밭을 가꾸는 농촌 유학생. 마을 이웃 제공
한여름 곡성 죽곡초등학교 텃밭에서 학생들을 다시 만났다. 전교생 서른여덟명 중에서 여섯명이 농촌 유학생이다. 전교생 이름과 얼굴을 알 뿐만 아니라 함께 어울려 공부하고 논다. 마을교육공동체가 활성화된 곳인지라, 텃밭 수업을 이끄는 선생님도 죽곡마을 주민이다. 학생들은 씨앗부터 열매까지, 농작물이 언제 어떻게 자라는가를 제 손으로 키우며 터득한다. 때에 맞춰 우는 새와 날고 기는 곤충과 내리는 비와 내리쬐는 햇볕 역시 오감으로 느낀다. 만물과 교감하는 생태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현장이다.
지난 2년 동안 서울 학생 687명이 농촌 유학을 희망했다. 유학생 중에서 기간을 연장하는 비율이 70% 내외에 이를 만큼 만족도가 높다. 이와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서울시교육청은 농산어촌 유학을 더욱 권장하고 대상 지역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대도시와 농산어촌, 서울과 지방의 경계를 허물고 생태전환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은 옳다. 다만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학생들을 맞을 농산어촌 학생과 학부모들의 부담과 충격은 물론이고, 훗날 유학생들이 돌아간 뒤 겪을 농산어촌 학생들의 슬픔과 그리움까지 섬세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우정을 지속하고 생태시민으로 재회할 미래까지, 교육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줬으면 좋겠다.
어깨동무하며 섬진강 들녘을 오간 학생이라면 제철 마음을 먹을 줄 안다. 도시에선 좀처럼 먹기 힘든 마음이다. 8월 하순 이맘때 핀 나팔꽃이 가을바람을 부른다는 것도, 뱀들이 부쩍 많이 로드킬 당한다는 것도, 독수리연에 미루지 말고 아침이면 논에 나가 목청껏 참새를 쫓아야 한다는 것도, 붉은 배롱나무로 잠시 피한 참새들이 더 많이 몰려온다는 것도.
섬진강 들녘, 적진주찰 품종 벼 위의 독수리연. 마을 이웃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