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6일부터 시작한 환갑삼이의 강연은 12월20일 22회로 마칠 예정이다. 11월16일에는 그들의 발길이 경남 진주시를 거쳐 전남 곡성군에 닿는다. 청중이 적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는 섬진강의 몇몇 지인들에게 나는 웃으며 답했다. 환갑삼이는 숫자에 연연하는 분들이 아니라고.
지난 1월26일 서울 과학책방 갈다에서 연 첫 ‘환갑삼이’ 토크콘서트에서 도서평론가 이권우씨, 전 국립과천과학관 관장 이정모씨, 과학책방 갈다 대표 이명현씨가 활짝 웃고 있다. 이정모씨 제공
김탁환 l 소설가
평균수명이 늘면서 환갑을 특별히 기념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줄었다. 농촌에선 환갑에도 청년회장을 하는 이들이 여럿이다. 노인정 문턱도 넘지 못한다는 농담까지 덧붙었다.
이권우, 이명현, 이정모. 여기 올해 환갑을 맞은 세 사람이 있다. 공교롭게도 모두 성이 이(李)인 그들은 ‘환갑삼이’(還甲三李)를 앞세우고 일년 내내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을 다니고 있다. 힘차게 나아가는 기세가 연말에도 끝날 것 같지 않다.
나이가 같고 성이 같다는 것 외에 세 사람을 묶어준 것은 무엇일까. 생김새도 다르고 일하는 방식도 제각각인 그들에겐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책이다. 이권우는 도서평론계의 시조새와도 같다. 지금은 도서평론이 하나의 영역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았지만, 30년 전만 해도 그 위치가 명확하지 않았다. 문학평론에 미치지 못하는 짧은 서평이 도서평론이라고 폄하되던 시절, 이권우는 여러 매체에 꾸준히 글을 썼다. 이명현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을 일찍부터 시작한 천문학자다. 그와의 첫 인연은 2009년 시작됐다. ‘세계 천문의 해’ 한국조직위원회 문화분과위원장이 된 그는 문인들과 함께 글을 쓰고 책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정모는 자연사박물관과 과학관을 책을 읽고 논하는 곳으로 만들려는 꿈을 꾸었다. 2010년대 초반,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 목요강좌를 수강하기 위해선 과학책을 먼저 읽어야 했다. 그 덕분에 두툼한 과학책들을 독파하며 역사교양에 못지않은 과학교양의 힘과 재미를 느꼈다.
또한 세 사람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기획자다. 이권우는 오랫동안 다양한 독서프로그램을 만들어 도서관에 제안하고 함께 이끌어왔다. 읽기와 쓰기를 합친다거나 고전을 완독하는 강좌를 계속 열었다. 도서관 발전 방안과 책 축제를 논의하는 자리엔 빠지지 않고 그가 있었다. 도서관 사서들이 가장 아끼는 도서평론가로 손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명현은 외계 지적생명체를 찾는 프로젝트 세티(SETI)의 한국 책임자로 오래 일했으며, ‘과학책방 갈다’를 제안하고 대표를 맡았다. 그에게 이끌려 ‘우주생물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생태에 관한 과학적 접근이 필요할 때마다 ‘갈다’에서 선택한 책들을 지금도 참고하고 있다. 이정모는 실패 속에서 과학 하는 방법을 깨닫도록 만드는 과학관들을 잇달아 선보였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과 서울시립과학관을 거쳐 국립과천과학관까지, 직업이 ‘관장’이라는 농담까지 곁들이며, 대중이 과학을 더욱 가까이에서 경험하도록 방향을 틀었다. 보는 과학관에서 하는 과학관으로, 학예사들이 자유롭게 책을 쓰고 강연하는 과학관으로 변모시켰다.
종횡무진 일하며 40대와 50대를 보낸 뒤 어느덧 환갑에 이르렀다. 올 연초 세 사람은 전국 연속 합동강연이라는 도전을 시작했다. 그동안 쌓아온 우정과 협업의 경험 그리고 몇마디 말보다는 행동으로 어려움을 돌파해온 삶의 태도가 결합한 것이다.
독서 인구가 줄어드는 시대 아닌가. 지방의 도서관과 동네책방을 지원하던 프로그램을 정부가 나서서 줄이거나 없애는 시절 아닌가. 이 어두운 때에 웅크린 채 남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 쓰고 논하는 판을 만들기 위해 세 사람이 나선 것이다. 좋아서 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좋아서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말리겠는가.
그 여정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 또한 사실이다. 각자 벌여놓은 일들도 많기에, 시간을 조율하여 먼 길을 오가기란 불편하고 복잡하고 힘들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내하며 벌써 열달을 돌아다닌 그들에게서 나는 책을 품고 60년을 걸어온 순례자의 품격을 느낀다.
1월26일부터 시작한 환갑삼이의 강연은 12월20일 22회로 마칠 예정이다. 11월16일에는 그들의 발길이 경남 진주시를 거쳐 전남 곡성군에 닿는다. 청중이 적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는 섬진강의 몇몇 지인들에게 나는 웃으며 답했다. 환갑삼이는 숫자에 연연하는 분들이 아니라고.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인 곡성에 알맞은 이야기를 할 것이며, 또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인 듯하지만, 나는 환갑이 되면 무엇을 할까. 뜻 맞는 동년배들과 함께 방방곡곡 도서관과 책방을 순례하며, 웃음에 능한 이는 웃음을 전하고, 춤에 능한 이는 춤을 추고, 이야기에 능한 이는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환갑삼이가 먼저 그 길을 가는 중이니, 우리도 그 착하고 유쾌한 발자국을 따라 디뎌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