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난치병 투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수원시 중앙병원 장례식장에 윤석열 대통령의 조화가 놓여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한겨레 프리즘] 황춘화 | 사회정책팀장
125만8410원. 지난 21일 지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경기도 수원시 한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수원 세 모녀’가 대한민국 복지체계 안으로 들어왔다면 매달 받을 수 있었던 최소한의 금액이다. 암과 난치병 등 건강 문제를 안고 있있던 60대 어머니와 40대 두 딸은 2020년 4월 집에서 유일하게 생활능력이 있던 아들이 세상을 떠난 뒤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정부는 이들처럼 주소득자 사망 등의 이유로 갑자기 소득을 상실한 저소득가구(중위소득 75% 이하)에 최대 6차례 긴급생계비를 지원하는 긴급복지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보장급여를 신청했더라면 기초생활수급자로서 생계급여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세 모녀는 한푼도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 복지제도는 신청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신청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 약자인 저소득층이 복잡한 사회복지제도를 ‘꿰뚫고’ 주민센터로 찾아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런 이유로 비극은 반복된다.
정부는 위기가구를 더 열심히 찾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복지사각지대 발굴시스템에 연계된 위기정보를 현행 34종에서 39종으로 늘리고, 연락이 닿지 않을 경우 경찰과 협조해 실종자에 준하는 수준으로 소재를 파악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주민 전수조사도 예고했다.
문제는 정부 대책에 사각지대 발굴 ‘그 뒤’가 없다는 점이다. 숨진 세 모녀는 건강보험료 체납으로 사각지대 발굴시스템에 포착됐지만, 지자체 우선순위에서 밀려 복지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실제 정부가 포착한 위기가구 가운데 지자체가 조사에 나서는 건 상위 2~3%인 18만~20만명에 불과하다. 발굴된 위기가구에 실질적인 혜택을 지원하는 건 결국 ‘사람’인데, 복지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지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현 정부 정책기조상으로 (복지사각지대 해소 문제는) 풀기 어려울 겁니다. 우선 공무원들이 늘어나고 역할이 확대돼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는 공무원을 늘리지 않겠다는 기조거든요.” 해법은 비교적 명확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정답을 써낼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전망한다. 윤석열 정부는 재정건전성 강화를 이유로 공적 부문 긴축과 구조조정을 예고한 상태다. ‘선별적 복지’를 통해 복지 효율화를 꾀하겠다는데, 말이 효율화지 사실상 복지 축소 선언이다.
이는 최근 국회에 제출된 내년도 예산안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부는 내년 예산을 5.3% 늘렸지만, 복지예산 증가율은 4.1%에 그쳤다. 문재인 정부(2018~2022년) 평균 증가율 10.5%의 절반 수준이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7%대 증가율에도 미치지 못한다. 산업분야 예산이 전년 대비 18% 늘어난 점을 고려하면, 현 정부에서 복지의 위치는 더욱 선명해진다. 정부는 기초수급자 생계비 등 77개 복지수당을 정하는 ‘기준중위소득’을 역대 최대 수준(5.47%)으로 올려 “두터운 사회안전망을 구축했다”고 자화자찬하지만, 지난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5.2%로 24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현장에서 일할 ‘사람’을 달랬더니 정부는 ‘인공지능(AI) 복지사 시스템’을 들고나왔다. 정보수집으로 포착한 위기가구의 초기 상담을 인공지능이 수행한다는 건데, 부채 등 여러 이유로 그늘 속에 숨어버린 위기가구를 얼마나 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수원 세 모녀의 죽음이 알려진 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복지 아닌 약자복지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정권의 복지재정 확대를 정치복지로 평가절하하고, 자신의 복지재정 축소를 약자복지로 고급스레 포장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슬프다면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건 연극에 불과하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수원 세 모녀 사건 이후 윤석열 정부를 에둘러 비판하며 한 말이다. 이제 진짜 대책을 이야기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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