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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너무 심각한 ‘아랫돌 빼기’ 예산안

등록 2022-09-01 18:19수정 2022-09-02 02:40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상세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상세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안이 윤곽을 드러냈다. 7월 국가재정전략회의 결과가 알려지고 기획재정부의 ‘세제개편안’이 발표되었을 때부터 어느 정도 방향이 예측되긴 했지만, 실제 예산안이 안겨주는 충격은 예상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세금을 대폭 깎아 재정수입을 줄이겠다고 하더니 건전재정이라는 명분으로 올해보다 줄어든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취약계층과 지방에 들어갔던 예산과 사업을 빼내 기업과 중산층, 수도권에 재정이 집중되도록 했다. 이렇게 파격적으로 아랫돌을 빼내 윗돌을 괴면 사회가 무너진다. 시민들이 선택한 정부이고 이 정부의 정책노선을 5천만 국민이 감당하긴 해야겠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아랫돌의 충격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2023년 예산안이 드러낸 내년도 주거정책은 그 변화의 방향과 강도에서 가히 파격적이라 할 만하다.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공급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공공분양주택 공급예산을 늘리면서 마치 두 정책이 호환 가능한 사업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두 정책은 정책 대상이 전혀 다른 사업이다. 국토교통부는 시가의 70% 수준으로 공급되는 원가주택 등이 주거취약 계층을 위한 정책이라고 말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얼마나 싸게 공급하는가와 무관하게 아파트를 분양받을 능력이 되는 사람들은 임대주택에 거주하지 않는다. 안정적인 임대주택이 필요한 사람과 저렴한 분양주택이 필요한 사람은 다르다.

얼마 전 폭우로 반지하 거주 시민들을 위한 주거정책의 필요성은 온 사회가 공감한 바 있다. 국토교통부는 이번 예산안에 반지하 거주 시민들의 이사비용 지원과 5천만원 한도 대출 지원사업을 반영하고 반지하 거주 시민들을 위한 대책이라고 설명하는데, 이러면 안 된다. 국토교통부 공무원들도 설마 이사 갈 곳이 없어서 문제인 이들에게 이사비용을 지원하는 게 대책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자리 정책에서 아랫돌 빼기도 심각하다. 정부는 노인 직접일자리 사업 예산을 삭감하면서 고령자 고용 기업에 고용지원금을 대폭 늘리겠다고 한다. 고령자 고용지원금도 고령자 일자리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역시 두 정책의 대상 집단은 다르다. 현재 직접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고령층은 주로 70대 이상 시민들이다. 이들은 기업에 고용돼 종일 노동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단시간 공공일자리가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현 정부는 현재 제공되고 있는 공공 직접일자리를 ‘질 낮은 일자리’라고 깎아내리지만, 그 일자리로 생계를 유지하는 시민들에게 중요한 건 ‘질이 높은지 낮은지’가 아니다. 고령자 고용지원금이 만들 수 있는 일자리는 기업이 요구하는 노동강도를 감당할 수 있는 ‘젊은 노인’들에게 효용이 있지, 70대 이상 고령층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가 아니다.

청년일자리 예산안도 마찬가지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정부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청년고용장려금이나 유지 지원금을 거의 없애다시피 하면서 ‘디지털 인재 양성’ 사업 등을 새롭게 편성했다. 정부는 현재 청년고용 창출 및 유지 지원금을 애써 ‘코로나 한시 사업’이고 내년도 경기가 회복될 전망이므로 없애도 된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전혀 아니다. 정부가 새롭게 추진하는 사업으로 혜택을 볼 수 있는 청년과 현재 고용 관련 지원금으로 혜택을 보는 청년은 다르다. 2020년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의 취업 적체가 여전히 심각하다. 이 청년들에게 다시 ‘디지털 교육’을 받아서 취업하라고 하는 건 현실성이 없을 뿐 아니라, 너무 가혹한 일이다. 당장 일자리가 필요한 청년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빼내 미래의 직업교육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이것은 이것대로 저것은 저것대로 해야 한다.

새롭게 들어선 정부에 자신들의 공약을 실현할 정책을 시행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국민에게 약속하고 집권했으니 하시라. 그런데 이런 식으로 아랫돌 빼서 하면 안 된다. 대기업과 고소득층에게 일방적인 혜택을 주는 법인세, 상속세, 종합부동산세 감세 정책만 철회하더라도 현 정부가 원하는 정책과 기존의 정책이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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