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으로부터의 자유'와 수원 세모녀. 김재욱 화백
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41년 1월6일 월요일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하원의회 연단에 섰다. 그 자리에서 그는 유명한 네 가지 자유를 역설했다. ‘언론의 자유’, ‘신앙의 자유’와 함께 그는 ‘결핍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want)와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힘주어 강조했다.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는 세계대전의 참화에서 시작해 1929년부터 닥친 경제 대공황과 이에 맞서기 위해 루스벨트 대통령이 시작한 뉴딜정책에서 얻은 교훈을 반영한 것이다.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개념은 케인스의 사상과 뉴딜의 경험을 따른 것으로서, 사회정의와 경제적 번영이 불가분으로 연결된 개념”(<필라델피아 정신>, 알랭 쉬피오)이다.
루스벨트가 주창한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는 이후 자유권과 함께 현대 인권 개념의 양대 축인 ‘사회권’ 개념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루스벨트가 하원의회 연설 일곱달 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와 함께 내놓은 ‘대서양 선언’에선 “전세계의 국민에게 공포와 결핍에서 벗어나 자유 속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해줄 평화가 확립되길 원한다”는 문구로 부활했다.
이는 국제노동기구의 정신적 배경으로 여겨지는 1944년 5월 ‘필라델피아 선언’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유명한 구절을 첫번째 원칙으로 내세운 선언은, 세번째로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을 위태롭게 한다”고 해 결핍으로부터의 자유가 인류에게 필요한 핵심 개념이라고 천명했다. 4년 뒤인 1948년 12월 유엔이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은 의식주, 의료 및 필요한 사회복지를 포함해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정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와, 실업·질병·장애·배우자사망·노령 또는 기타 불가항력의 상황으로 인한 생계 결핍의 경우에 보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25조)고 천명했다.
한국에서도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되면서 비로소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는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됐다. 2014년 서울 송파구 세 모녀에 이어 얼마 전 경기 수원시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그들이 결핍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의 굴레에 놓여 있었음이 드러났다. 거듭되는 ‘결핍이 부른 사회적 타살’ 앞에서 제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세분의 명복을 빈다.
전종휘 전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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