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말고] 이고운 | 부산 엠비시 피디
서른의 초봄, 4년 동안 다니던 첫 직장을 그만뒀다. 다행히 퇴직금이 동나기 전 그해 겨울 취직을 했다. 두번째 직장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부산의 한 방송국. 대학에 입학한 스무살부터 서른살까지, 햇수로 꼬박 11년을 서울에서 살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피디는 20대 내내 열망했던 직업이었다. 원했던 일을 마침내 하게 된 게 그저 벅차서, 그 일을 어디서 하느냐는 상관없었다. 서울에 너무 많은 피디가 몰려 있는 건 분명 지구를 기우뚱하게 만드는 일, 까짓것 나는 부산으로 가서 거기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겠다! 서른의 겨울, 부산행 열차에 앉아 어쩌면 이건 지구의 균형을 맞추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역 방송국 입사 4년차, 지금껏 연출한 프로그램만 다섯개다. 시청률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내가 만든 다섯개 프로그램 중 단 하나도 본 적 없는 부산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시청자 게시판에서 이런 글을 발견한 적도 있다. “재미없는 지방 방송 말고 서울 방송 좀 틀어라.” 내가 연출하는 시사 프로그램이 동시간대 인기 예능 대신 편성됐을 때였다. ‘저도 그 예능 참 좋아하는데요, 선생님. 방송시간대를 제가 정하는 게 아닌지라… (중략) 어떻게 보면 저희 것이 재미는 좀 덜해도 의미는 더 있지 않나 싶고, 지구의 균형을 맞추는 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고요.’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간 시말서를 쓸 게 분명해서 타는 속을 카페인으로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연차가 쌓일수록 불안도 조금씩 자라난다. 밤잠을 줄이며 만든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매번 콩알만 하다. 서울에서 누군가가 만든 콘텐츠가 세상을 뒤흔들 동안, 내 프로그램은 우리 동네도 못 흔들고 있는 것 같다. 그저 날마다 조금씩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닌가. 내가 하는 일에 어떤 의미도 없으면 어쩌나. 불안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늦은 밤 지하 편집실에서 속도가 나지 않는 편집을 하고 있을 때가 최악인데, 쓸데없이 꼭 에스엔에스(SNS)를 들여다보게 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방송을 만드는 대학 친구들은 누구나 아는 유명 프로그램에 속해 있다. 나보다 연봉이 훨씬 높은 첫 직장 친구들은 심지어 나보다 많이 자고, 많이 쉬고, 많이 놀고 있는 것 같다. 머리로는 안다. 에스엔에스로 올라온 얘기들은 그들 일상의 하이라이트일 뿐이야. 그런데 마음속 목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내 일상의 하이라이트는 오늘 구내식당에서 나온 요구르트뿐인데.
과연 나는 지구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걸까. 중심이 아닌 주변부를 맴도는 이의 자기 위로 아닐까. 망설임 없이 첫 회사를 그만두고, 기꺼이 부산행 열차에 올랐던 내 등짝을 때려주고 싶은 날들이 많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쌓여가는 불안 속에서 스스로를 의심하다 그저 도망치고 싶어질 때면 어떤 결정적 순간을 마주친다. 현장에 인터뷰하러 갔다가 ‘아무도 안 하는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듣거나, 촬영을 마칠 무렵 ‘지역에 이런 프로그램이 있어서 참 다행이네요’ 같은 말을 듣게 되는 순간. 그런 순간을 마주하면 속절없이 다시 믿게 된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분명 지구의 균형을 맞추는 데 보탬이 되고 있다고. 세상 모두가 열광할 법한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지금 여기에 분명히 필요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고. 그런 감각을 느낄 때, 나는 언제나 정확하게 기쁘다.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다시 과거의 내 등짝을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솟아날지라도.
서울이 아닌 곳에서 방송을 만든다는 건 누구나 알 법한 불안과 나만 아는 기쁨 사이를 헤매는 일인지도 모른다. 대체로 불안하고 아주 가끔 기쁘지만, 매일 기쁘다면 그건 지구의 균형과는 먼 일이 될 테니까. 오늘의 나는 그저 지구의 균형을 맞추는 데 진심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