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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 학기 한 권 읽기’ 최고의 독자들

등록 2022-09-12 17:58수정 2022-09-13 02:37

지난 6일 ‘2022 개정 교육과정 국민참여소통채널’ 누리집에서 국어과 내용에 달린 댓글들. ‘한 학기 한권 읽기’가 축소되어선 안 된다는 우려들이 담겼다. 누리집 화면 갈무리
지난 6일 ‘2022 개정 교육과정 국민참여소통채널’ 누리집에서 국어과 내용에 달린 댓글들. ‘한 학기 한권 읽기’가 축소되어선 안 된다는 우려들이 담겼다. 누리집 화면 갈무리

[숨&결] 이안 | 시인·<동시마중> 편집위원

“안녕하세요? 저는 2-3 ○○○입니다. ‘아홉 살 시인 선언’에서 봤어요. 시는 아름다운 거라고. 그래서, ‘작가님은 참 아름다워요’라고 말하고 싶어요. 왜 작가님이 좋으냐면요, 저도 작가가 될 꿈이에요. 아마, 저도 크면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월요일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 주세요! ○○○ 올림.”

“안녕하세요? 저는 시인님 덕분에 시를 좋아하게 됐어요. 저는 ‘은’을 좋아해요. 되게 은은하고 잔잔해서 좋아요. 덕분에 시가 재밌다는 걸 알았어요. 1학년 때부터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만났네요. 시를 재밌게 써 주셔서 감사해요. 2022년 7월14일 목요일. 2학년 2반 ○○○.”

“안녕하세요! 저는 2학년 1반 ○○예요. 저는 시인님의 ‘신비로운 사람’ 시가 제일 기억에 남았어요. 원래 시를 좋아하진 않았는데 시가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인지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시인님의 앞을 응원할게요! ○○ 올림.”

최근 만난 경기도 소재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 독자들의 편지다.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 처음 제시되어 2018년부터 교육 현장에 적용되고 있는 ‘한 학기 한 권 읽기’ 프로그램은 대상 도서의 작가를 학교로 초대하여 강연을 듣고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작가를 만나기 전, 어린이들은 대상 도서를 읽어 나가면서 여러 가지 독서 활동을 한다. 대상 도서가 동시집인 경우, 질문지 만들기, 교실이나 복도에 시화 전시, ‘내가 고른 베스트 5’(반별, 학년별 통계를 내기도 하는데, 이는 작가가 신뢰할 만한 독자 반응이다), 시노래 부르기, 필사와 암송, 좋아하는 구절로 캘리그래피 만들기, 작가에게 편지 쓰기 등. 이런 활동을 마친 어린이 독자들의 질문은 구체적이고 진지하며, 때로는 근원적이다.

“저는 ‘그림자 눈사람’ 시가 제일 재미있습니다. ‘그림자 눈사람’을 쓸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시를 썼나요?” “그림에서는 그림자가 아니라 눈사람이 눈사람을 안고 있는데 그림자여야지 않나요?” “시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도라지꽃 이야기’ 시가 너무 좋은데 무슨 뜻(의미)인가요?” “주로 무슨 마음으로 시를 쓰시나요? 감동인가요? 사랑인가요?” “시인의 생활은 무엇입니까?” “어쩌다가 시인이 되셨나요?” “시가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작가로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요?”

질문을 궁리하고 작가의 답변을 들으며 어린이 독자들은 또 한 번 성장한다. ‘한 학기 한 권 읽기’로 만난 어린이 독자들은 언제나 내가 만난 최고의 독자였다. 훌륭한 독자는 거저 나오지 않는다. 어린이 독자 뒤에는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준비한 교사가 있기 마련이다. 같은 학년 교사들이 서로 도와 대상 도서를 고르고, 작가를 섭외하고, 읽기의 과정과 방법을 구성하고, 학부모의 협조와 참여를 유도하고, 행정에 필요한 서류를 갖추는 일까지 번거로운 일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도 안 하려면 안 해도 되는 고생을 사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문해력을 높일 뿐 아니라 분절된 교육과정을 넘어 통합적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데 바탕이 되며 교사의 교재 구성력을 높이고 동료 사이의 협력과 학생 교사 학부모로 이어지는 교육 공동체 가꾸기로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성명서, ‘2022 개정 국어교육과정에서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지우려는 시도를 당장 중단하라!’ 2022년 9월8일) 그리고 무엇보다 한 권의 ‘온’ 작품(집) 읽기를 통해 가정의 격차가 읽기의 격차를 만들어 내는 현실을 개선하고 ‘낱’ 작품 읽기로는 도달할 수 없는 독서교육의 총체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온갖 영상 매체가 지배하는 세상에 능동적으로 저항하며 좋은 독자를 기르는 과정이자 좋은 저자의 꿈을 꾸게 하는 장기적이고도 대안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독자가 자라서 저자가 된다. 줄이거나 없앨 게 아니라 더욱 풍부하게 넓혀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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