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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후변화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나무

등록 2022-09-14 18:33수정 2022-09-15 00:21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남극해 캠벨섬에 있는 가문비나무. ‘지구에서 가장 외로운 나무’인 이 나무는 우연히도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오브제가 됐다. 조슬린 턴불 제공
남극해 캠벨섬에 있는 가문비나무. ‘지구에서 가장 외로운 나무’인 이 나무는 우연히도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오브제가 됐다. 조슬린 턴불 제공

남종영 | 기후변화팀 기자

랜펄리 경은 왜 가문비나무를 남극에 가져갔을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1900년대 초반, 뉴질랜드 총독이었던 그가 작은 묘목을 들고 캠벨섬에 도착했다. 키 작은 풀과 푸석푸석한 이끼가 가득한 툰드라 대지 위에 수목원이라도 만들려고 했을까?

캠벨섬은 남극해에 외롭게 떠 있다. 성난 남극순환해류가 일으키는 소용돌이 바람에 풀도 키를 키우지 못한다. 어쨌든 랜펄리 경은 이 섬에 유일한 나무를 심었고, 이 나무는 ‘랜펄리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북반구 출신인 가문비나무가 남극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이 가문비나무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기네스북에 등재되면서다. 원래는 사하라사막에 있는 아까시나무가 주인공이었다. 아마 여러분도 사막에 앙상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 사진을 한번쯤 본 적이 있으리라. 이 나무로부터 동서남북 400㎞ 이내에는 단 한그루의 나무도 없어 ‘세상에서 가장 외딴 나무’로 기네스북에 올랐는데, 1973년 화물차에 치여 사라져버렸다. 그 자리에 랜펄리나무가 올랐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이 나무를 찾는 이들이 늘어났다. 지구의 비밀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지질·핵과학연구소의 기후변화 과학자 조슬린 턴불도 그중 한 사람이다. 나는 그에게 무작정 이메일을 보냈고,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관해 설명했다.

“우리가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이게 다 온난화에 영향을 미치진 않아요. 절반은 대기에 존재하면서 기상이변과 해수면 상승 같은 온갖 나쁜 일을 벌이지만, 절반은 바다와 땅이 다시 흡수하거든요.”

그리고 그가 말했다.

“지구가 있잖아요. 우리가 100원을 내면 50원을 남겨주는 거예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그러니까 그는 바다와 땅이 온실가스를 빨아들이는 ‘고마운 작용’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수수께끼 상자는 아직 다 열리지 않았다. 그저 남극해가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의 10%나 흡수할 정도로 바다 중에서도 가장 고마운 바다라는 추측 정도가 있다. 그나마도 장기간에 걸쳐 흡수량이 늘었다 줄었다 했는데 무엇 때문인지도 풀어야 할 과제다. 이 문제를 풀면 어쩌면 기후위기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남극해를 돌아다니며 이산화탄소를 측정한다. 거친 바다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2ℓ짜리 플라스크에 공기를 채집한다. 혹은 남극대륙 빙상에 구멍을 뚫어 채집한 얼음시료의 측정값을 이용한다. 이렇게 하면 동위원소를 이용해 먼 과거의 이산화탄소량을 추정해볼 수 있다.

남극해 한가운데 있는 캠벨섬에는 100년쯤 전만 해도 나무 한그루 없었다. 남극(정확히는 아남극)의 바람과 추위가 가만히 놔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슬린 턴불 제공
남극해 한가운데 있는 캠벨섬에는 100년쯤 전만 해도 나무 한그루 없었다. 남극(정확히는 아남극)의 바람과 추위가 가만히 놔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슬린 턴불 제공

아델리펭귄이 캠벨섬을 걷고 있다. 조슬린 턴불 제공
아델리펭귄이 캠벨섬을 걷고 있다. 조슬린 턴불 제공

그런데 문제는 수십년 전 근과거는 알 수 없다는 거였다. 인류가 지구에 난도질을 가한 지난 세기 이산화탄소량이 어떻게 변했고, 궁극적으로 남극해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걸 채취할 만한 깨끗한 시료가 없다는 생각이 들 즈음. 그에게 떠오른 것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나무’였다.

“나무의 나이테를 이용하면, 광합성을 하던 당시의 대기 환경을 알 수 있어요.”

알다시피 나이테는 일년에 하나씩 생긴다. 2016년 그는 지름 5㎜ 되는 작은 드릴로 나무에 구멍을 뚫어 샘플을 채취했다. 논문은 곧 발표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나무는 몇년 전 유명해졌다. 인류세를 연구하는 일군의 과학자들이 이 나무를 새로운 지질시대의 대표 화석으로 제안하는 논문을 낸 것이다. 인류세는 지구의 물리화학적 시스템을 바꿀 정도로 인간이 지구의 초강대자가 된 새로운 지질시대를 일컫는데, 관련 학자들은 20세기 중반 현세인 홀로세는 끝나고 인류세가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왜 20세기 중반일까? 그 전에 볼 수 없었던 물질, 이를테면 인공 방사성물질, 플라스틱 쓰레기, 사람보다 많은 수의 닭뼈 등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이 나무에 구멍을 다섯개 뚫었고, 나이테에서는 정확히 1965년에 대기 중에 탄소동위원소 C14, 플루토늄239 등 수치가 가장 높은 ‘밤 스파이크’(bomb spike)를 기록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45년 7월 미국 뉴멕시코주에서의 원폭 실험 이후 수십차례 이어진 원폭 실험에 따른 방사능 낙진이 지구를 떠돌다가 남극의 외딴섬까지 다다른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외로운, 다행히 살아 있는, 어쨌든 아름다운 화석. 턴불이 말했다.

“캠벨섬은 사람은 살지 않지만 아주 많은 바다사자와 바다코끼리 그리고 앨버트로스와 펭귄이 사는 아름다운 섬이에요. 그 나무에 가려면 해안가에 배를 세워두고 바다코끼리들의 주의를 돌린 다음 향기나는 풀밭을 헤치고 올라가야 하죠. 아주 특별한 곳이에요.”

남극엔 도저히 살 수 없는 가문비나무를 갖다 놓은 인간의 상상력으로 위기의 지질시대가 시작됐고, 지금은 인간이 그 나무를 통해 위기를 벗어나려 한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인류세’일까?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나무는 자신의 몸을 깎아 내주면서, 지구의 비밀을 풀 목각 열쇠를 만들라고 한다. 그러기도 전에 따뜻해진 남극의 섬에 다른 나무의 씨앗이 움틀지도 모르지만.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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