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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우정의 전문가

등록 2022-09-18 18:56수정 2022-09-19 02:36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말고] 서한나 | 보슈(BOSHU) 공동대표·<사랑의 은어> 저자

평생 비행기 공짜 대 평생 택시 공짜.

나는 비행기를 골랐고 물어본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자주 타게 되진 않더라도 비행기 공짜를 맡아두면 자유로운 기분이 들 것이다. 택시 타고 내가 갈 곳은 그래 봐야 일터이거나 같이 일할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곳일 테니.

친구의 친구는 얼마 전 결혼했고, 대학생 때부터 모은 항공사 마일리지로 남편과 미국에 간다. 동부와 서부를 모두 도는 2주. 그걸 위한 비즈니스클래스 항공권 두장. 공짜. 그 친구 결혼식에 잘 다녀왔냐고 묻는 나에게 친구는 마일리지 사건을 이야기해주며 여기에 우정의 완패라는 이름을 붙였다. 카드를 썼어도 나랑 더 많이 썼는데 어떻게 그걸 걔랑 써. 나는 옆에서 거들었다. 그렇지, 결혼은 걔랑 해도 비행기는 너랑 타야지.

울어도 너랑 더 울었고 웃어도 너랑 더 웃었는데. 그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친구는 사람을 너무 웃게 한다. 나는 웃음 끝에 너 코미디언 해라, 하고 사정하지만 그는 편집자가 되었다. 필요할 때만 웃기는….

이 아이를 포함해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들 무리를 사인방이라고 부른다. 다 자란 뒤로는 명절에 우리 학창 시절을 보낸 대전에서 만나 차나 술을 마실 뿐이고, 매번 같은 옛날이야기를 하며 같은 지점에서 웃을 뿐인데, 어떤 변화도 없을 것 같은 장기 우정 중에도 새삼 우정을 생각하게 되는 때가 있다.

넌 내가 다른 친구 얘기하면 질투 안 나? 라고 묻는 그에게 전혀 질투 안 난다고 대답할 때, 네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우정을 만들어가는지, 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는 그런 너와 어떤 우정을 하려는지 생각하게 된다고 대답할 때.

한 사람의 변모와 회개를 기다려주는 것이 우정이라면, 우정하다, 라는 말도 가능할 것이다. 그가 나를 우정해준 덕분에 그가 어떤 여자가 돼가는지 볼 수 있었다. 그가 스무살에 마주한 서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곳 앞에서 서성였는지 제대로 아는 것 없지만, 추석에 한번 설날에 한번 가수원동을 걸으면서 서해반점과 기쁨주는머리방에 관해 이야기하는 즐거움으로 과거가 여기 어디쯤 있구나, 실감했다.

대전에서 이들과 산책길을 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 다녔던 고등학교 쪽으로 걷거나 같이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의 약수터를 향해 걷는다. 연휴 끝에 혼자 걷다가 약수터 가는 길 사진을 친구에게 보냈다. 배롱나무, 전원주택, 철조망 뒤의 열매가 보이는 사진이었는데, 회사에 있는 그가 점을 잔뜩 찍어 답장을 보냈다. 그립다…. 아름다운 곳…. 슬프다…. 근데 엄마가 너무 웃긴 게, 나랑 장태산 쪽으로 걷다가, 아 맞다 어차피 너도 매일 시골로 출근하지? 그러는 거야. 친구는 파주에서 일한다. 연휴 중 하루는 엄마와 천변을 걸었다.

모두에게 각자의 구석이나 정해둔 자리 같은 게 있고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회사 근처 큰 나무 아래. 끈적한 몸으로 돌아다니던 구봉산 근처, 사라진 문구점이 있는 초등학교 골목, 친구 엄마 차를 타고 다녀오던 강의 하류, 나는 오래된 친구들과 오래 알고 지낸 동네를 걸으며 호사를 누리는 기쁨을 알았다.

1999년, 우리가 7살이었고 공원에서 짜장면을 먹는 중학생 언니들을 보면서 경외하던 때였다. 사인방은 다 커서 서울의 성수·연남과 대전의 관평·관저에 흩어져 산다. 얼마나 많이 컸냐 하면 일진도 학생주임도 무섭지가 않다. 우리는 명절이 아닌 때에도 만날 것이다. 연휴에 논 게 재미있어서. 연남동 집에서 겨울 목걸이를 만들기로 해서.

※글의 제목은 진은영의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에 실린 ‘사랑의 전문가’에서 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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