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세상읽기]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
대통령 한 사람 바뀌었는데, 나라의 안위와 격이 이렇게까지 흔들릴 것이라곤 상상 못했다. 급기야 서구 언론들까지 윤석열 대통령에게 훈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속담까지 인용해가면서 윤 대통령에게 정치의 기본부터 배우라고 질타했다.
하지만 정치의 기본을 배워야 할 사람이 윤 대통령만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무능이 만천하에 드러날 때,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코로나 19의 충격이 채 수습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물가, 이자율, 환율이 급등하면서 민생이 풍전등화에 처했는데도, 수원 세 모녀 참사처럼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투를 벌이는데도, 민주당이 한 일이 뭔지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보다 더 ‘내로남불’ 하는 정권이라고 비난한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보수가 만든 왜곡된 ‘공정 프레임’에 빠져 정권을 잃었는데도, 그 프레임에 제 발로 들어가 자신은 그래도 덜 나쁜 정권이었다고 강변하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
집권 초부터 20%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무능한 대통령을 보면서, 실수만 하지 않으면 다음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는 것은 물론 정권도 되찾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다.
국민은 참담할 정도로 무능하고 불공정한 윤석열 정부보다 조금 덜 무능하고, 조금 덜 불공정한 민주당을 대안으로 생각할까? 민주당 전당대회를 지켜보면서 과연 이 정당에 희망을 걸어도 되는지 의구심이 커졌다. 도대체 민주당이 꿈꾸는 나라가 어떤 모습인지, 민주당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질문과 문제의식조차 없는 것 같았다. 들리는 소리라곤 세대교체로 치장한 반이재명이라는 공허한 외침뿐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이재명 의원이 당 대표가 되었다. 이재명 대표는 첫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면서 “민생을 위한 개혁을 실용적으로 해나가겠다” 며, 자신이 이끌어갈 민주당의 노선을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무능과 불공정을 비난하는 것을 넘어 민생을 민주당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과제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신임 대표의 일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실용적 민생개혁’ 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바로 그거야’ 라는 확신보다, 지난 대선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이라는 공약이 겹쳤다. ‘실용적 민생개혁’ 이라는 이재명 대표의 노선은, ‘탈모약에 건강보험 적용’ 과 ‘보편적 기초연금 40만원’처럼 민주당이 다양한 사람들의 실용적 이해에 부합하는 민생 입법을 추진하면, 다양한 국민이 각자의 이유로 민주당을 다시 지지할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누구나 경제적 이익에 민감하다. 하지만 경제적 이익이 우리의 모든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이재명 대표가 이야기한 것처럼, 일부 고소득층이 민주당을 지지하고, 일부 저소득층이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이유이다.
국가 지도자를 뽑는 일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국민의 정치적 행위는 개별 정책의 경제적 이해를 넘어 국민의 심연에 내재한 근원적 가치와 신념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개별 정책은 그다음이다.
묻고 싶다. 이재명 대표가 이야기하는 ‘실용적 민생개혁’ 이 성공하면,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가 되는가. 청년 고용 문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 불평등, 기후위기가 완화되는가.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데 각자의 이익에 부합하는 실용적 정책을 만들면,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 모두에게 좋은 복지국가를 만들어주는 것인가.
국가 지도자는 자치단체장도 기업인도 아니다. 계곡을 정비하는 것 같은 눈에 보이는 실용적 민생개혁은 중요하다. 하지만 국가 지도자라면 국민의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실용적 민생개혁’ 은 그 비전 위에 피어나야 할 ‘화려한 꽃’ 이다.
정권의 정치적 공세가 거세어도,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이 꿈꿔야 할 대한민국을 펼쳐 보여야 한다. 국민의 심연에 맞닿아 국민의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비전이 있어야, 이재명 대표의 미래도, 민주당의 미래도, 더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도 꿈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