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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를 깨우는 낮은 목소리

등록 2022-09-25 18:02수정 2022-09-26 02:38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말고] 명인(命人) | 인권교육연구소 ‘너머’ 대표

에스엔에스에 접속하면 실시간으로 뉴스들이 덮쳐온다. 사람들은 이제 누구나 비평가다. 거의 모든 사안에서 사람들은 스포츠를 즐기듯 편을 갈라 환호하거나 조롱과 야유를 쏟아낸다. 어떤 사람들은 짐짓 이성적이고도 논리적인 비평을 내놓는다. 하지만 한꺼번에 쏟아지는 너무 많은 정보와 사람들의 너무 빠른 판단에 나는 멀미가 난다. 모든 판단에 멈칫거리는 나는 되도록 뉴스를 피해 다닌다. 그럼에도 사회면의 어떤 뉴스들은 날아와 가슴에 박힌다. 그럴 때면 치밀어오르는 울분에 한참 숨을 골라야 한다.

호기롭게도 이 불평등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오기로 버티던 시절, 나는 늘 화가 난 사람처럼 살았다. 그게 이 사회에서 나처럼 아픈 사람들과 같이 아파하며 연대하는 거라고 믿었다. 그때 나는 온 세상에 공격적이었고, 타인에게는 물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을 바꿔보자던 정치 조직들은 점점 힘을 잃었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점점 더 참혹해졌다. 마침내 우리조차 우리를 믿을 수 없는 캄캄한 세상이 도래한 것 같았다.

그 와중에 나를 깨운 것은 ‘노동인권 교육’으로 만난 청소년들이었다. 어떤 질문을 해도 안전하다는 감각 그리고 생각하고 말할 수 있도록 조성된 상황과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질문만 주어지면 학생들은 교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학교에서조차 놀라운 토론을 보여주었다. 기껏해야 일회성 교육이 학생들에게 무슨 영향을 얼마나 끼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일깨워 주었다. 내가 뿌린 씨앗이 어디로 날아가 언제 어떻게 열매를 맺을지 모른다 해도 그 청소년들과 함께 살아갈 세상에서 내가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릴 이유는 충분하다는 것을.

그제야 떠올랐다. 고집스레 옳다고 믿는 것에 완고하던 나를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적셔온 낮은 목소리들. 별 관심이 없는 나에게 만날 때마다 직접 바느질한 면 생리대를 선물하던 친구가 있었다. 내가 실업자일 때, 다시 취직하면 <녹색평론>을 구독하고 싶다고 블로그에 흘린 말을 잡아채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1년간 <녹색평론>을 보내주던 블로그 이웃도 있었다. 전쟁반대 집회에 나가기 전 자기 집 플러그부터 뽑는다던 벗들과 시골살이에서 먼저 배워야 할 것이 농사 지식보다 ‘나눔’과 ‘돌봄’이라는 것을 몸으로 가르쳐준 이웃들, 아무리 가르쳐도 자꾸 잊어버리는 생판 서울내기를 산으로 들로 바다로 데리고 다니며 풀과 꽃과 나무와 바다 생물을 만나게 해주신 선배들, 시행착오와 온갖 노력을 거쳐 먼저 알게 된 정보와 지식을 누구나 쓸 수 있게 값없이 공유하는 사람들, 같은 말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잘 들리게 말하려고 단어나 표현을 세심히 고르던 사람들, 함께 싸워야 할 때 피하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침묵이 더 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지금 여기서 살아내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 말이다.

내가 어려서부터 살던 서울을 떠나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고 했을 때, 나보다 먼저 서울을 떠난 친구가 했던 말도 자주 생각난다. “우리 중 누구라도 먼저 행복해져야 해요.” 너무 많은 사람이 아픈 세상에서 혼자 행복한 건 죄스러운 일이지만, 세상에 대고 늘 화만 내는 사람이 가자는 길을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는 이제 확신에 찬 사람보다는 끊임없이 흔들리는 사람을,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듯 세상을 바꾸자는 사람보다는 낮은 목소리의 힘을 믿는 것 같다. 그리고 물러서서 귀 기울이는 연습을 한다. 나는 이제 당신이 작게 말해도 잘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 조심조심 밭을 골라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땅속에도 어둠만 있는 게 아니라 무수한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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