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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탁환 칼럼] 마을영화제에서 새로운 시작을

등록 2022-09-27 18:27수정 2022-09-28 02:38

코로나19는 마을의 자연스러운 어울림마저 끊어놓았다. 이웃과 만남은 물론이고 마을끼리 협력과 마을 활동가들의 연대도 멈췄다. 정기적으로 열렸던 놀이와 회합도 대부분 취소됐다. (…) 마을영화제는 이렇게 끊겨 딱딱하고 서먹서먹해진 사람들을 이으려는 시도다. 모처럼 함께 모여 축제를 준비하니 저절로 흥이 나는 것이다.
지난 24일 전남 곡성역에 집결한 제1회 섬진강 마을영화제 참가자들. 사진 정무영
지난 24일 전남 곡성역에 집결한 제1회 섬진강 마을영화제 참가자들. 사진 정무영

김탁환 | 소설가

‘섬진강 마을영화제’를 처음으로 준비하며 봄과 여름을 보냈다. 감염병의 기세가 한풀 꺾이자 전국 곳곳에서 마을영화제 소식이 들려왔다. 특별한 주제를 집중해서 다루는 영화제들은 예전부터 열렸고, 공동체 상영으로 관객을 만나는 움직임 역시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마을’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제들의 등장은 신선하고 흥미롭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3년 가까이 광장을 잃었다. 함께 모여 벌이던 판들이 대부분 접혔으며, 낯선 이들과 마주 앉아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눈 밤들은 옛 추억으로 치부됐다. 공연장과 영화관과 서점을 찾는 발길이 현저하게 줄었다. 자기만의 방에서 영화를 보고 책을 주문하고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방식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비대면 문화의 확장에 힘입어, 접촉 대신 접속을 앞세우는 가상현실 플랫폼들이 미래의 문화를 좌지우지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더 빨리 더 넓게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진입장벽 없는 안전하고 거대한 판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높다.

마을영화제를 준비한다고 밝힐 때마다 다양한 충고가 날아들었다. 열에 아홉은 전망이 어두웠다. 매달 일정 금액만 내면 집에서 편히 영화를 맘껏 보는 시대에, 누가 제 돈과 시간을 써가며 그 먼 곳까지 가서 마을영화제에 참여하겠느냐는 것이다. 마을 홍보와 마케팅이 목적이라면 더 나은 방안이 얼마든지 있다고도 했다. 회복기에 어울리는 이야기판이 간절해서라고 답하면 긴 침묵이 찾아들었다. 마을영화제라는 방식의 효율성을 논하기 전에, 마을영화제를 준비하는 이들의 고민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다.

코로나19는 마을의 자연스러운 어울림마저 끊어놓았다. 이웃과 만남은 물론이고 마을끼리 협력과 마을 활동가들의 연대도 멈췄다. 정기적으로 열렸던 놀이와 회합도 대부분 취소됐다. 접촉을 줄여 감염을 막긴 했지만, 더불어 살지 못하는 답답함과 외로움이라는 지독한 병을 키웠다. 마을영화제는 이렇게 끊겨 딱딱하고 서먹서먹해진 사람들을 이으려는 시도다. 모처럼 함께 모여 축제를 준비하니 저절로 흥이 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미 있는 지역축제가 아닌 마을영화제인가. 역설적이게도 팬데믹을 겪으며, 영화는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새로운 이야기를 펼치는 친근한 방편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젠 누구나 영화를 고르고 추천하고 평하는 시대로 들어섰다. 골방에서 익힌 영화 활용법을 광장으로 다시 끌고 나온다고나 할까.

마을영화제는 영화를 통해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새롭게 나누려는 판이다. 영화를 상영하는 곳도 마을이고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 또한 마을이다. 팬데믹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지방 농촌 마을들엔 소멸이란 단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인구소멸위험지역이란 이름엔 절망과 쇠퇴와 슬픔의 기운이 가득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명명된 지역에 속한 마을들의 사계(四季)와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에 주목한 적이 있었던가.

혼자 아프고 혼자 낫는 방식이 아니라, 회복을 돕고 위로하는 든든한 울타리가 곧 마을이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주장을 되새김질해야 하는 이유다. 마스크 없이 걷고 먹고 쉬고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한 마을은 어디일까. 내가 사는 마을과 섬진강을 이웃한 마을은 무엇이 같고 다를까.

지난 24일 전남 곡성역에서 섬진강 침실습지까지 플로깅과 함께 ‘기후정의행진’을 한 뒤, 퐁퐁다리에서 구호를 외치다. 사진 정무영
지난 24일 전남 곡성역에서 섬진강 침실습지까지 플로깅과 함께 ‘기후정의행진’을 한 뒤, 퐁퐁다리에서 구호를 외치다. 사진 정무영

참가자들이 섬진강과 들녘을 돌아다니다가 마을에서 영화를 보도록 동선을 짰다. 영화 속 마을뿐 아니라 영화 밖 마을까지 느낄 기회를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예를 들어 섬진강 마을영화제가 열린 9월24일 하루는 이러했다. 오전 11시 곡성역을 출발한 참가자 마흔명은 쓰레기를 주우며 섬진강을 따라 한시간을 걸은 뒤 침실습지 퐁퐁다리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다. 들녘을 따라 다시 한시간을 걷다가 대평리 마을카페에서 영화 <파밍 보이즈>를 보았으며, 또다시 한시간을 걸어 장선리 폐교 앞마당에서 영화 <그레타 툰베리>를 감상했다. ‘기후정의행진’까지 겸하면서, 두편의 영화를 섬진강 마을과 벼가 익어가는 들녘과 함께 품은 셈이다.

이때 영화는 흩어지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며 부푼다. 영화 속 이야기와 영화 밖 이야기가 만나고 마을에 사는 사람과 마을을 찾아온 사람이 만난다. 그 만남에서 비롯한 대화가 깔끔하고 가지런하며 해답을 곧 찾으리라 기대하진 않는다. 안개 자욱한 새벽 섬진강을 걷듯 아득하고 힘겨울 수도 있다. 그러나 걷고 느끼며 보고 나눈 이야기엔 마을 밖에서 불어닥친 흉흉한 소문이 아닌, 바로 지금 이곳 마을들의 고통과 바람이 고스란히 담겼다. 여기서 시작하는 것이 옳다.

지난 25일 전남 곡성읍 카페 ‘낭만가옥’에서 폐막작 &lt;미싱 타는 여자들&gt;을 보고, 감독과 출연자들과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 정무영
지난 25일 전남 곡성읍 카페 ‘낭만가옥’에서 폐막작 <미싱 타는 여자들>을 보고, 감독과 출연자들과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 정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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