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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대통령의 ‘슈퍼베이비 계산법’

등록 2022-10-04 18:11수정 2022-10-05 02:37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7일 세종시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을 방문해 아이들과 시장놀이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7일 세종시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을 방문해 아이들과 시장놀이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겨레 프리즘] 황춘화 | 사회정책팀장

이번에도 입이 방정이었다. 지난달 27일 저출산 위기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아이들 돌봄 현장을 직접 살펴보겠다며 세종시 어린이집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학부모·보육교직원과 간담회를 하던 중 영아들이 어린이집에 온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는 눈치였다. “난 아주 어린 영유아들은 집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아기들도 여기 오는구나. 두살 안 된 애들도….” 그도 겸연쩍었던 걸까. “6개월부터 온다”는 보육교사의 말에 윤 대통령이 덧붙인 말이 화근이었다. “6개월부터… 그래도 뭐 걸어는 다니니까.”

6개월 우리 아기는 이제 겨우 앉았는데요!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한민국 부모들이 적잖이 놀랐을 테다. 하지만 염려할 필요 없다. 보건복지부 임신육아종합포털 ‘아이사랑’ 월령별 성장 자료를 보면, 6개월 아기는 도와주면 기대앉고 10~12개월이 돼야 ‘(발달이) 빠른 아이들의 경우’ 혼자 걷는다. 뉴스를 검색하다 보니 6개월에 걷는 ‘슈퍼베이비’가 있긴 했다. 어쩌면 윤 대통령은 이런 ‘슈퍼베이비 계산법’으로 ‘만 5살 초등 조기입학’ 정책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교육정책이 꼬이고 교육부 장관이 한달여 만에 날아간 건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아이 발달 사항을 알려주지 않은 탓이 크다.

대통령의 말실수에 빈정거림이 심한 것 아니냐 못마땅할지도 모른다. 물론 자녀가 없는 사람은 잘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대통령은 그래선 안 된다. “두돌, 아니 돌 전에 아이를 보육기관에 맡겨야 하는 서민들 실상을 모르는 분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워킹맘들이 어떻게 사는지 전혀 모르면서 돌봄을 그리 쉽게 입에 올리셨냐.” 댓글 민심만 봐도 많은 부모가 정책 설계자의 참을 수 없는 무신경함에 분노한다.

남녀고용평등법(19조)은 근로자의 육아휴직 기간을 1년 이내로 정해두고 있다. 엄마·아빠가 모두 육아휴직을 쓰면 두돌 남짓까지는 아이를 집에서 양육할 수 있지만, 한 사람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는 출생아 100명당 육아휴직 사용자가 여성 21.4명, 남성 1.3명이다.(국회입법조사처) 돌 전 아기 10명 중 최소 7명은 양가 부모나 돌보미, 보육기관의 도움을 받아 키우고 있다는 뜻이다. 2021년 상반기에만 여성 62만6천명이 ‘육아’ 때문에 경력이 단절됐고, 여성 경력단절의 45.2%는 만 30~39살에 발생하는 것도 이런 사정과 맥락을 함께한다. 윤 대통령은 이런 현주소를 알고 보육정책을 내놓은 걸까.

올해 2분기 출산율이 0.75명까지 급락하고 나서야 윤 대통령은 부랴부랴 국무회의를 열고 저출산 해결의 패러다임을 ‘출산율 제고’에서 ‘양육부담 완화’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부모 양육부담 완화를 위해 내년부터 만 0살 아동을 키우는 가정에 월 70만원씩 ‘부모급여’를 지급하겠다지만, 1년 동안 돈 몇푼 더 받자고 아이를 낳겠다는 사람은 없다. 2070년엔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65살 이상 인구 100.6명을 부양해야 한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오지만, 청년들 눈엔 2070년 먼 미래보다 아이를 낳은 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오고도 매번 모든 사람에게 미안한 워킹맘 선후배 혹은 동료의 모습이 더 암울할 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대한민국 저출산의 원인으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 환경, 교육 및 주거비 부담 등을 꼽았다. 대한민국에서 양육부담 완화는 돈 몇푼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출산율은 눈에 띄게 뚝뚝 떨어지는데 대통령은 현실을 모른다. 먼 길을 돌아 약 넉달 만에 임명된 복지부 장관은 기재부 출신의 복지 비전문가, 새롭게 지명된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경쟁만능주의자다. 이제 우리는 슈퍼베이비를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는 것일까.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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