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혁신] 김진화 | 연쇄창업가
요란하게 광고를 해도 모자랄 판에 부러 찾아오기 힘들게 만든 음식점이며 술집이 있다. 아예 출입구를 위장해놓기도 한다. 숨겨진 버튼을 눌러야 책장이 돌아가며 출입구가 나타나는 식이다. 저 악명 높던 금주령 시절, 단속을 피해 입소문만으로 몰래 찾아가던 술집들을 일컫는 스피크이지(speak-easy)가 아무나 올 수 없는 곳에 방문한다는 특별한 느낌을 주는 브랜딩 콘셉트로 자리잡은 사례다. 다소 식상해진 감도 있지만 이런 장소를 방문할 때면 불과 100년 전 ‘자유의 땅’ 미국에서 10년 넘게 금주법이 시행됐다는 사실이 떠올라 새삼 놀라게 된다.
지금쯤 옥토버페스트가 막 끝났을 맥주의 나라 독일을 생각하면 ‘맥주순수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맥주의 원료를 물, 보리(맥아), 홉, 효모 네가지로 제한하는 이 역사적 규제령은 그 이름만큼 순수하지만은 않았다. 식량(빵)의 재료인 밀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 그러나 모든 규제가 그렇듯 특권층을 위한 밀맥주는 예외였다. 당시에는 불평등한 고육지책이었을 억지 규제였지만 독일의 맥주 제조자들은 꽤 적응을 잘했고, 엄청난 제약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맥주를 만들어 순수하지 못한 순수령을 권위의 상징과 전통으로 탈바꿈시켰다. 다른 한편, 고수며 오렌지 껍질 등 다양한 재료를 농가마다 고유한 천연 효모와 결합해 개성 있는 맥주를 만들 자유를 누리게 된 이웃나라 벨기에는 독일과는 상이한 방식으로 유럽 맥주의 성지로 발전할 수 있었다.
금주법은 부족한 술로도 다양한 맛을 내는 칵테일 제조 기법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으나 마피아가 미국 전역으로 활개치게 된 동력 또한 제공하며 미국 사회를 바꿨다. 수정헌법 21조가 발효되고 금주법은 무효가 됐지만 밀주 공급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기세등등해진 마피아의 영향력은 이후로도 쭉 건재했다. 맥주순수령의 치졸한 예외였던 귀족들을 위한 밀맥주 제조 허가는 바이에른 맥주의 빛나는 전통이 되었다. 도로변에 접한 건물의 폭에 비례해 과세하는 규제책이 암스테르담 고유의 밀도 높고 아기자기한 도시 디자인으로 결과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시장은 흐르는 물이고 규제는 물길이며 일종의 사회 디자인이다. 규제는 악이고 자유는 선이라든가, 시장은 욕망의 게토이고 규제만이 살길이라는 식의 이분법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연말을 앞두고 ‘택시 대란’ 해법으로 파격적인 요금인상안이 제시됐다. 심야시간대 기본요금 인상에 콜 비용 등을 합치면 기본요금이 1만원에 육박한다. 비교적 저렴하게 통제돼온 그동안의 요율 체계, 대폭의 물가상승 등을 고려하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다만 그렇게 요란하게 모빌리티 산업의 미래를 놓고 논란을 빚다가 결국은 기존 체계를 보호하기로 하면서 새로운 서비스들을 문 닫게 만든 지 고작 2년 만에 이런 상황에 봉착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뭔가 개운치 않다. 택시기사들은 떠나고, 이용자들은 불편해졌으며, 앞으로 비용 지불을 늘린다고 해서 과연 편리해질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기술과 사람의 흐름이 자리할 역동성의 공간이 보이지 않아 우려된다.
규제만큼 모두에게 밉상인 존재도 흔치 않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규제보다는 진흥을 챙기려 들고, 정작 제대로 된 규제가 필요한 영역은 언제나 사각지대가 돼 성실한 이들은 떠나고 사기꾼과 야심가들의 놀이터가 된다. 그들이 이익을 사취하고 난 뒤엔 모두가 부담해야 할 청구서가 날아들고, 그때 가서야 서로 책임을 떠넘기느라 목청이 높아진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며 때론 금주법식의 막무가내 규제가 생겨나기도 한다. 잘나가는 산업에 숟가락 얹는 것엔 다들 능숙한데 흙탕물에 몸소 뛰어들어 물길을 만드는 일엔 소극적이다.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건 후자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