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회용 컵 사용 시 할인’ 정책을 펴고 있는 스타벅스코리아는 다회용 컵 사용 누적 주문 건수가 지난 7월21일 기준 1억건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스타벅스코리아 제공
[세상읽기] 김공회 |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
날로 숨쉬기가 어려워진다. 지구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는 이상 기상현상들은 기후위기가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임을 말해주는 것 같다. 우리는 이 위기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문제에 일찌감치 눈을 뜨고 인류에게 경고해온 선각자들이 있다. 그들은 인류의 각성과 윤리적 실천을 강조했던 것 같다. 소비를 줄이자, 폐기물을 재활용하자, 친환경적으로 생산된 상품을 소비하자. 최근 기후정의 운동은 양상이 좀 다르다. 개인보다는 체제 쪽으로 강조점이 옮겨갔다고 해야 할까? 기후위기의 주범은 인간이 아니라 자본이다! 기후변화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변화를! 이러한 구호는 지난달 24일 ‘기후정의행진’에서 전국 각지의 거리를 달구기도 했다.
많은 이들에게 이런 변화가 고무적으로 다가갔던 것 같다. ‘자본주의가 문제다!’라는 구호 앞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는 ‘구좌파’의 고백도 여럿 들었다. 그렇다고 개인의 윤리적 실천의 의의를 억지로 깎아내릴 필요는 없겠다. 아니, 정반대다. 기후위기가 ‘체제’의 문제임이 빠르게 공감대를 얻고 있는 요즘, 개인의 윤리적 실천의 가치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 그렇다는 것인가? 비밀은 돈이다. 최근 개인의 환경친화적 실천에 금전적 보상이 직접 주어지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창원시 사례를 보자. 지금 도시 곳곳엔, 투명 페트병과 빈 캔을 넣으면 자동으로 압착·분리할 뿐만 아니라 해당 재활용품을 가져온 시민에겐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기계가 설치돼 있다. 포인트는 일정 수준 쌓이면 현금처럼 쓸 수 있다. 개인 컵(텀블러)을 가져오는 소비자에게 커피값을 할인해주는 커피숍도 최근 부쩍 늘어나고 있다. 종전엔 개인 컵 사용은 그저 극소수 윤리적 소비자의 ‘작은 실천’이었을 뿐이다. 그에 대한 금전적 보상도 극소수 의식 있는 점주들이 행했을 뿐이다. 지금은 아니다. 스타벅스 같은 대형 커피전문점도 이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개인의 윤리적 행위에 금전적 보상이 점점 더 많이 주어지는 현재의 사태는 역설적이게도 ‘문제는 자본주의다!’라고 주장하는 기후정의 운동 진영에 까다로운 도전을 제기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본주의가 환경친화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이 오늘의 기후위기를 낳은 주범임을 부정하긴 어렵다. 자본주의 들어서 화석연료 사용과 탄소배출이 급증한 게 사실이니 말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반드시 그럴까?
이것이 자본주의가 윤리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윤리를 모른다. 여기에선 돈벌이가 지고의 가치다. 그러니 자본이 스스로 탄소배출을 줄이고 환경을 보호하는 데 적극적이라면, 이는 그것이 돈벌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 뿐이다. 왜 기업이 개인 컵을 가져오는 고객에게 커피값을 깎아주겠는가? 그러는 편이 나을 정도로 일회용 종이컵을 쓰거나 매장 컵 세척을 위해 사람을 쓰는 게 비싸지기 때문이다. 더 많은 소비자가 개인 컵을 가져올수록 자본은 돈을 더 번다.
그렇다고 해도, 자본 입장에서 전체적으로 비용이 상승한 건 사실이다. 비용상승은 가격에 반영될 것인데, 이는 전반적인 물가상승, 임금상승으로 이어져, 자본에는 또 다른 압박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자본이 ‘친환경’을 감수한다는 말인가? 단언할 순 없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왜냐하면 자본의 세계에서는 자본-노동 간의 갈등과 분배만큼 자본 간의 경합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용이 전반적으로 올라가도, 친환경적인 생산구조를 먼저 갖춰 비용우위를 달성한다면, 시장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보면 친환경적이고 탄소배출을 줄여나가는 자본주의라는 비전도 충분히 현실성을 갖는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문제는 빈곤, 소수자 억압, 대기업의 횡포 등은 지금보다 거기에서 더 악랄하게 인류를 괴롭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방향으로 자본주의를 전환하려면 국제사회 합의가 필요하다. 팬데믹을 겪으며 그런 합의의 훈풍이 부는 듯했으나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과 경제위기로 분위기가 빠르게 냉각 중이다. 그 바람을 어떻게 다시 일으킬 것인가? 어쩌면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의 관심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다. 정말로 체제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너머를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