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방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숨&결] 방혜린 | 전 군인권센터 활동가·예비역 대위
9월은 전 부처 공무원이 국정감사 준비로 바쁜 시즌이다. 의원실에서 요구하는 자료도 천태만상에, 모두가 하나같이 오후 2시쯤 협조 요청 메일을 보내면서 “금일 16시까지 부탁드립니다”와 같은 말을 적어둔다. 욕이 안 나올 수 없다.
국정감사는 대한민국 헌법 61조가 보장하고 있는, 국정 전반에 대한 조사를 통해 정부를 감시·비판하는 국회의 핵심 기능이다. 국정감사권은 군사독재 시절 삭제됐다가 1987년 민주화를 맞아 부활한, 민주주의의 소중한 절차다. 그러니 욕이 목 끝까지 차올라도 ‘국민을 대리한’ 국회의원의 감사를 받는데 요구 자료를 대충 보낼 수는 없다.
국정감사도 당연히 법적 절차에 따른 흐름이 있다. 전해 국정감사가 종료되면 결과보고서가 작성되고, 이에 따른 시정 처리를 요구하고, 처리 결과를 회부하면 이듬해 이를 토대로 감사 계획과 자료제출 요구 등을 준비한다. 전해 국정감사 결과 해마다 나오는 부처별 정책자료집과 현안을 토대로 국회입법조사처에서 국정감사 정책자료를 내고, 감사계획서가 작성되면 드디어 10월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입법조사처가 낸 2022년 국정감사 정책자료를 보면, 올해 국방부 현안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확장억제전략협의체와 같은 안보 문제부터 병사 휴대전화 사용, 양심적 병역거부에 이르는 인권 문제까지 총 19개 과제(방위사업청 포함)가 선정됐다. 하나 막상 감사가 시작되면 헛웃음이 나온다. 쓸모 있는 자료는 겨우 서면질의로 껴서 보고서에 한줄 남을까 싶고, 국감 현장은 씁쓸하게도 정치적 계산이 들어간 발언과 말싸움 등으로 가득 찬다. 삼권분립 아래 국회의 행정부에 대한 중요한 감시 기능이, 개별 의원이 주목을 받기 위한 소재 또는 정략적 이해관계 속에서 소비되고 흩어지는 것이 오늘날의 국정감사다. 올해 국방부 국정감사의 가장 중요했던 핫이슈는, 19개 과제도 아니고, 북핵도 아닌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이었다. 종국엔 주요 관련자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야당 당사 압수수색까지 이뤄졌으니 만사 제쳐놓고 서해에 ‘올인’한 덕분이다.
국감이 파행되거나 정회되는 이유도 기가 막힌다. 합참 국감에서는 한·미·일 연합훈련을 두고 “대일 감정을 부추기기 위해 일본이 가장 위험하다는 국회의원이 있다면 정식으로 사과해야 한다”는 김기현 의원의 발언을 놓고 여야가 설전을 벌이다 정회했다. 군사동맹 파트너로서 일본의 적절성을 두고 의미 있는 질의를 하는 게 아니라 대뜸 반일 문제로 프레임을 돌려버린 셈이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진행된 군사법원 국감에서는 현무미사일 낙탄 사고를 둘러싸고 실제 질의 내용의 맥락과는 전혀 상관없는 ‘최고존엄’ 표현의 사용과 관련해 설전이 벌어졌고 또 정회됐다. 군사법원 감사에서 생뚱맞게 미사일 낙탄 사고에 대한 대국민 사과 요구가 나온 것은 일단 논외로 하자.
북한은 국정감사 기간이든, 우리 군 훈련 기간이든 상관없이 미사일 발사 시험과 포격을 일삼고 있고, 10월에만 미사일 12발을 발사했다. 병영과 인권 관련 과제도 산적해 있긴 마찬가지다. 해마다 등장하는 국군 장병 자살과 관련한 문제는 장병 건강뿐 아니라 군기·병력 손실을 야기하지만 의원들 관심 밖의 이슈고, 지난해 공군과 해군에서 성폭력 피해자 사망 사건이 연이어 터지며 진통을 겪었던 군대 내 성폭력 문제도 별 말 없이 넘어가기는 마찬가지다. 법사위에서 현무미사일 탓을 할 것이 아니라, 군 성폭력 범죄의 민간법원 이양과 관련한 내용을 점검했어야 했다는 건 너무 큰 기대일까? 국민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는 곳은, 비단 서해 바다뿐 아니라 2022년 군대에서도 마찬가지다.
국회 국정감사는 제 기능을 하는 걸까? 오늘도 민생과는 상관없는, 의미 없이 호통치는 모습 한편 남기는 쇼케이스쯤으로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안타까운 사실 하나. 2022년 국방부 국정감사가 종료된 현재까지도, 2021년 국정감사 결과보고서는 채택되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국감은 왜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