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로 통제된 서울 용산구 사고 현장에서 지난달 30일 새벽 소방관과 경찰들이 사상자를 이송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현석 | 소설가·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한순간도 걷지 않았습니다. 계속 뛰어다녔습니다. 의료진에게 인계할 때, 다른 구급대원들에게 이송 지시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순간도 걷지 않고 뛰어다녔습니다.
10월29일의 구급대원 행적을 정리했던 용산소방서 이은주 구급팀장의 말이다. 생사의 현장에 한 번이라도 있어본 사람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걷지 않은 것이 아니다. 걷지 못한다. 걸을 수 없다. 뛰어야 한다. 땀에 흠뻑 젖어도 땀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는다. 어디에 부딪혀 멍이 들어도 멍이 드는 줄 모르고, 어디에 긁혀서 피가 흐른대도 피가 흐르는 줄 모른다.
그날 밤, 단순 시비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뜻밖의 현장을 마주한 이태원파출소 소속 경찰관 세 명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중 한 명인 김백겸 경사는 골목 앞쪽에서 사람들을 구조하다 골목 뒤쪽으로 돌아가 인근 주점 난간에 올라 외쳤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제발 돌아가주세요. 보고 있지만 말고 이동해주세요. 김 경사가 인터뷰를 통해 그날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강조했던 것은 이름 모를 사람들의 헌신과 협조였다. 골목 뒤편에서는 모든 사람이 그가 소리치는 방향으로 이동을 했고, 골목 앞쪽에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쪽지를 붙인 간호사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쪽지에 적힌 글에서 간호사는 본인이 시행했던 심폐소생술이 혹여나 아프지는 않았을지 걱정한다. 마지막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안식을 기원하면서 옆에서 손이라도 잡아드리고 눈감는 길 외롭지 않게 도와드렸어야 했다고 적어둔 쪽지에는 말줄임표가 자주 등장한다. 언어가 되기 힘든 잔상과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그 쪽지로부터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패션잡화 매장을 운영하던 상인 남인석씨는 그날 밤, 쓰러지는 인파를 보고 서둘러 가게 문을 열어 몇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갇혀 있다가 난간을 타고 현장을 가까스로 빠져나왔던 자밀 테일러, 제롬 오거스타, 데인 비사드도 구조에 동참했다. 경기도 동두천 미군 주둔 캠프 케이시에서 근무하는 세 사람은 가까스로 사고 현장을 빠져나왔지만 차마 발걸음을 돌릴 수 없어 밤새도록 구조를 도왔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그들 외에도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람이 구조에 동참했다는 것을. 심폐소생술 시행이 가능하신 분들은 도와달라는 확성기 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사람이 서슴없이 폴리스라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는 것을.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지금 미안해하고 있다. 소방관은 더 많은 사람을 살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제 할 일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면목이 없다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간호사의 쪽지에는 짧지만 옆에서 마지막을 함께 있으면서 미안함이 컸다고 적혀 있다. 상인은 참사 이튿날 골목에 제사상을 올리면서 그를 제지하는 경찰관에게 애들 밥상을 올려야 할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었을 다른 많은 사람들이, 단 한순간도 걷지 못했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왜 그들이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가. 왜 고개를 숙여야 하는가. 왜 그들이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가. 모두 의인이 되지 않았어도 될 평범한 사람들이었는데.
이 평범한 사람들의 목록을 기억하자.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든, 제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이든 그곳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본능에 따라 다른 사람을 도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하여 의인이 되지 않았어도 될 사람들이 의인이 되게끔 만든 자들이 누구인지, 진상을 규명하고 진짜 책임자를 처벌할 때까지 기억하고 또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