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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빌드업 없는 뻥 정권과 정치개시명령 [편집국에서]

등록 2022-12-07 18:55수정 2022-12-08 00:38

화물연대 총파업과 관련한 업무개시명령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지난달 29일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관련 부서에서 직원들이 업무개시명령 송달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화물연대 총파업과 관련한 업무개시명령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지난달 29일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관련 부서에서 직원들이 업무개시명령 송달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국에서] 김남일 | 사회부장

나처럼 월드컵이 열려야 축구경기 보는 사람이 있다. 평소 관심 두지 않으니 이기면 즐거워서 좋고 져도 굿게임이었다며 박수치는 마음이 편하다. 정부·여당이 화물연대 파업을 대하는 태도가 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큰일이다. 아무 관심 없다가 파업 임박해서야 새벽 4시 열리는 월드컵 축구경기 보듯 ‘한번 만나긴 해야지’ 알람을 맞춘다.

문제는 이조차 제스처에 그친다는 것이다. 후반전 한참 지나 일어나서 패스, 슛 소리만 지르다 ‘그럴 줄 알았다’며 티브이(TV)를 끄는 식이다. 그렇게 지원하는데도 저거밖에 못 한다는 욕도 빼먹지 않는다. 맞아야 정신 차린다, 옛날이 좋았다 뇌까린다. 누구 하나 역적 만들어야 끝이 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전의 한국 축구를 볼 때 많은 이들이 이랬고, 2022년 윤석열 정부의 화물연대 파업 때리기가 이렇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국민의힘, 보수언론은 자기들끼리 공 돌리며 잘한다 칭찬하기 바쁘다. 기득권 진영 공놀이에서 화물노동자는 같은 팀이 될 수 없다. 다시는 운전대 놓지 못하게 본때를 보여야 할 대상일 뿐이다. 노동자 단체행동을 범죄, 테러, 정치파업으로 몰아가는 일이야 워낙 흔했기에 그 의도가 뻔히 보인다. 강성 귀족노조 타령도 하루 14시간 운전하는 귀족은 없으니 흘려들을 수 있다. 그런데 돌연 이번 파업이 북한 동조, 체제 전복, 북핵 위협 수준이라고 떠들기 시작한다. 주한미군 개입이라도 요청할 기세다. 화물연대 파업이 반복되는 이유, 지난 6월 파업 때 정부가 한 약속, 안전운임제 입법 진도를 따지는 것은 이 정부에는 너무 고급 전술이다. 월드컵 기간 치킨 배달이 늦어진 것도 화물연대 파업 탓으로 돌리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은 허물고 올리기를 반복하며 뼈대를 만들어가는 한국 사회 빌드업을 20년 전 뻥 축구 때로 백패스하고 있다. 참여정부 첫해인 2003년 12월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시쳇말로 똥볼을 차올렸다. 그해 두차례 화물연대 파업에 놀라 화물노동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조항을 정부 입법으로 만든 것이다.

외환위기 충격으로 실직·퇴직자가 넘쳐나던 1999년 정부는 수십년 면허제로 묶여 있던 화물운송사업을 규제완화 차원에서 등록제로 전환했다. 요금은 자율에 맡겼다. 진입장벽이 낮아지자 화물차주가 크게 늘었다. 물동량은 따라주지 않았다. 화물차 공급과잉은 화주의 이익이 됐다. 싼값에 화물을 나를 수밖에 없으니 2003년 화물연대 파업은 필연이었다. 정부는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 2004년 다시 허가제로 전환했지만 해결책은 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업무개시명령이 도입됐다. 지입제 등 구조적 요인은 그대로 둔 채 강제운전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당시에도 터무니없었다.

“나라의 물류수송이 마비되었다고 한들 국가가 월급 주는 것도 아니면서, 공공성을 담보하는 일을 제대로 관리해 주지도 않으면서, 개인사업자한테 ‘올라가서 운전하라’고 명령하는 잘못된 법이다.”

과거 여의도에도 이 정도 상식은 있었다. 2003년 12월8일 야당이던 한나라당 서상섭 의원의 업무개시명령 반대 논리는 정연했다.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아서 노동법상 보호도 못 받는 화물연대 쪽에 조그만 생존권적 파업까지 불허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강제근로를 강요하는 위헌적 요소가 있다.”

참여정부가 차올리고 열린우리당이 받아서 한나라당에 패스한 업무개시명령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이후 화물연대 파업에 대응하는 정부의 전방 압박 전술이 됐다. 업무개시명령 발동을 필두로 유가보조금과 고속도로 통행료 할인 중단, 비복귀자 형사처벌, 화물운송자격 취소 엄포 포메이션은 참여정부에서 쓰이기 시작해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그대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이 앞선 보수정부조차 차마 쓰지 못한 업무개시명령 단추를 쉽게 누른 이유는 뻔하다. 그저 법대로 한다는 단순 법치주의다. 법·제도의 연원, 효과, 부작용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니 정치도 행정도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제라도 2003년 뻥 축구가 만들어낸 업무개시명령의 수정·폐지에 나서길 바란다. 이는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뒤늦은 정치개시명령이 될 것이다.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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