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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울 회는 파이다~” 제철 회에 담긴 부산 싸람의 ‘다정’

등록 2022-12-11 18:38수정 2022-12-11 22:05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말고] 이고운 | 부산 엠비시 피디

찬바람이 불 때면 밀치(가숭어)회에 밀면을 곁들여 먹는다. 부산에서 이년째 함께 사는 나와 남편이 겨울을 맞이하는 법이다.

부산에서 자란 나는 상상조차 못 해본 이 음식조합을 발견한 건 남편의 친구다. 기왕 부산까지 왔으니 밀면도, 회도 놓칠 수 없었던 여행자의 마음이 만든 기묘한 조합. 그런데 먹어보면 의외로 맛이 좋다. 녹진한 밀치회 한입과 새콤한 밀면 국물을 한모금씩 번갈아 먹다 보면, 끝도 없는 맛의 굴레를 신명나게 돌게 된다. 하지만 부산 사람들에겐 어쩐지 이상한 조합일 것이다. 유난히 회를 좋아하는 엄마는 경을 칠지도 모른다.

봄에는 도다리, 가을엔 전어, 겨울엔 밀치. 부산에서 자라는 동안, 나는 계절의 흐름을 제철 회의 맛으로 알았다. 엄마 덕분이었다.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고 회사 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엄마는 때가 되면 이런 연락을 했다. 이를 테면 가을 단풍이 무르익을 때쯤 “니 전어 먹어야 되는데. 서울 회는 파이다 아이가 (서울 회는 별로잖아)”라는. “서울 회는 파이다” 라는 엄마의 말은 ‘보고 싶다, 부산에 와’ 라는 뜻이었는데, 그걸 알면서도 나는 괜히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엄마, 여기도 비싼 회는 맛있다.”

실제 부산으로 달려가 함께 제철 회를 먹는 건 가끔이었다. ‘이상하게 물리더라, 전어는’ 막상 회를 가운데 두고 만나도 엄마는 금세 젓가락을 놓는 경우가 많았다. 대신 눈 뜨면 코 베어가는 데다 회까지 맛없는 서울에서, 내가 슬프거나 다치거나 무너지지 않고 잘 지내는지 살피는 데 골몰했다.

부산 영도에서 나고 자라 충남 보령이 고향인 남자와 결혼한 엄마는 경상도의 몇몇 도시에서 살았던 몇년을 제외하면 평생 부산에서 살았다. “속 디비지는 (속이 뒤집히게 답답한) 느그 아빠랑 사느라 사투리는 다 까뭇다 (잊어버렸다)” 고 주장하지만, 엄마는 1965년생 부산 토박이 여성이 쓸 법한 전형적인 부산 사투리를 쓴다. 나는 자라는 내내 그 말투가 불만이었다. 같은 사투리를 쓰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부산 토박이인 엄마의 말은 너무 짧고 효율적이어서 자주 퉁명스럽고 매정하게 들렸다. ‘엄마는 왜 내한테 맨날 짜증인데?’ 라고 물으면, 엄마는 “내가 언제”라며 퉁명스레 답했다. 그럴 때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다정한 엄마들은 왜 죄다 서울에만 있나 싶었다. 누구 못잖은 사춘기를 앓았던 내 말투도 엄마 못지않게 퉁명스러웠으며, 경력단절을 딛고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했던 엄마가 많이 지쳐있었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엄마는 잊지 않고 내게 제철 회를 챙겨 먹였다.

부산살이를 다시 시작한 지 꼬박 사년. 열여섯번의 계절을 맞는 동안, 엄마는 여전히 코앞에 살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볼 수 없는 딸의 제철 회를 챙긴다. 어쩌면 그것은 엄마가 가진 다정의 방식일 것이다. 제철 회를 먹어야 한다는 말로 너와 이 계절을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을 툭 던지는 것. 제철의 맛보다 사실 너의 일상과 안녕을 챙기고 싶은 마음. 짧은 말 한마디에 엄마는 당신만의 방식으로 다정을 가득 담아 나에게 건넨다.

어떤 다정은 미처 모르고 지나치기도 하고, 어떤 다정은 한참 뒤에야 돌아서 깨닫는다. 너무 많은 다정을 놓치지 않도록, 그래서 사무치는 그리움이 남지 않도록 오늘의 나는 먼저 다정하기로 한다. ‘엄마, 밀치랑 밀면 같이 먹어봄? 진짜 맛있다. 연말에 같이 먹자.’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무슨 그런 조합이 있냐며 성을 낼 것 같았던 엄마가 잠시 뒤 보낸 답장은 단 세 글자다. ‘그라자 (그러자)’

각자 가진 다정의 방식대로 서로를 아끼는 시간이 영영 오래이길 바라며, 연말엔 엄마와 함께 오랫동안 겨울의 맛을 나눠 먹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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