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전은지 |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박사 과정 때이니 12년 전 일이다. ‘국제 희박기체역학 심포지엄’(RGD)이라는 학회에 참석했다. 내가 하는 분야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붙인 이 학회에는 관련 분야 거장들이 참 많이도 모였다. 교수님을 따라 랩 소속 박사 과정 거의 10명이 우르르 학회에 참석했다. 그때는 내가 지금 쓰는 연구방법론을 만든 그레임 버드 교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라 이미 노인이셨던 그분의 기조강연도 들을 수 있었다. 책이나 논문에서만 보던 이 사람 저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옆에 있는 동료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저 사람이 네가 읽던 그 책을 쓴 사람이야. 저 사람이 그 논문의 저자야”라고.
독일의 연구 동료들이나 영국의 박사후 과정 지도교수도 모두 이 학회에서 만나 안면을 텄다. 참석하는 학회는 여럿 있지만, 2년에 한번 열리는 이 학회는 관련 분야 거장부터 꼬꼬마 석·박사 과정까지 모두 모이는, 우리 분야에서 매우 의미 있는 모임이었다. 그러니까 박사 과정부터 그 학회에 참석하는 어린 연구자들이 자라 독립 연구자가 되어 학회에 오고, 나이가 들어 시니어 학자가 되어도 오는 식이다. 이 학회를 20년 이상 참석한 시니어 연구자들이 많고, 나 역시 참석하면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전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오랜 친구들 말이다.
우연히, 내가 한국에 부임하고 이 학회가 ‘국제 희박기체역학 심포지엄 32’라는 이름을 달고 올해 한국에서 열렸다. 코로나 와중이라 변동이 많은 상황에서 학회 전부터 동료들과 이메일이 여러개 오갔다. 모두 코로나로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기에, 다들 학회에 참석하고 싶어 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보겠다는 생각에 모두 가슴이 부풀었다.
학회 첫날 아침, 등록데스크로 가는 길에 문자가 여럿 도착했다. 지금 등록데스크에 와 있는데 너는 어디 있느냐는 연락들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도착하니 거기에는 루마니아에서 B 박사가, 영국에서 W 박사가, 미국에서 A 박사가 와 있었다.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친구들과 나는 모두 박사 과정이거나 박사후 연구원으로 연구 자리를 찾아 고군분투하며 한 시절을 동고동락했기 때문이다. 많은 날을 같은 연구실 혹은 같은 건물을 오가며 마주칠 때 “잘돼가니?” 하던 인사들이 주마등처럼 우리 눈앞에 지나갔다. 그 다음날에는 독일에서 W 박사가 도착했다. 독일항공우주센터(DLR) 시절 가장 가깝게 지내던 동료였다. 퇴근할 때마다 내 오피스에 들러 안 풀리던 나의 문제들을 묵묵히 들어주던 녀석이었다. 이 센터를 떠난 이후 한동안 만날 수 없다가 4년 만에 학회장에서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독일 어느 시골 연구소 뜨내기 연구원이었던 우리 둘이 시간이 흘러 정착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얼싸안고 감격스러워했다.
학회 중 하루 저녁에는 모두 시간을 내어 서울 삼성역 근처 허름한 통닭집에 모였다. ‘한국식 치맥을 알려주마!’ 하고 내가 마련한 자리였다. 원래는 친구들만 부르려던 자리가, 친구들의 학생들까지 가세해 결국 전세계에서 온 20명가량이 모였다. 학생들은 지도교수인 우리를 앞에 두고 신나게 떠들었다. 그러니까 그들끼리 친구가 된 것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슬며시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아이들은 자란다. 박사 3년차 학생으로 학회에 처음 참석했던 내가 같은 학회의 조직위원을 하고, 좌장을 하고, 만찬 사회를 볼 만큼 시간이 흐르면서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 이 학회에 나의 학생들을 데리고 가서 발표를 시키고, 학문의 흐름을 보게 한다. 이 학생들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학회의 중심축이 되고 전세계의 많은 친구를 만나서 함께 연구를 진행하겠지.
그렇게 학문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진다. 정해진 시간만 사는 인간이 무엇을 다 알기란 언감생심. 선배들이 마무리하지 못한 것들을 우리가 이어받고, 우리가 다 해내지 못한 일들은 후배들이 맡아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