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12일은 진보정당운동의 정책통이었던 고 이재영 진보신당 정책위의장의 10주기였다. 십진법을 바탕으로 옛 사건이나 고인을 기리는 풍속 탓에 올해가 유별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요즘 유독, 변혁운동과 진보정치에 함께한 이들 가운데 우리 곁을 떠난 이들이 많다. 정치경제학자인 정태인, 박승호 선생을 비롯해 4월 혁명 시절부터 사회운동을 이끌어온 원로 김금수 선생,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앞장선 김연환 전 서울지하철 노동조합 위원장이 세상을 떠났고, 며칠 전에는 갑자기 노옥희 울산 교육감의 비보가 전해졌다.
믿음직한 기둥 같던 이들이 떠나니 새삼 더, 먼저 떠나보낸 이들의 기억이 사무친다. 그래서 모처럼 이재영 유고를 모은 <이재영의 눈으로 본 한국 진보정당의 역사>(2013)를 펴들었다. 이 책은 안타깝게도 지금은 절판 상태이지만, 1990년대 말부터 2010년대 초까지 한국 진보정당운동의 궤적과 고뇌를 생생히 담고 있다.
첫 몇 쪽을 넘기자 눈에 들어온 것은 1999년에 당시 막 첫발을 떼던 진보정당의 정체성과 과제를 정리한 이재영의 문장이다. “노동자 대중정당”이라는 호명도 있고, “이념을 구성하는 정당”, “철저한 민주주의 정당” 같은 규정도 있다. 진보정당운동이 처음에 품었던 각오가 드러난다. 당의 지향을 “한국 운동권의 전근대성, 비민주성, 비효율성, 관념성을 숙청하고, 사회주의적 전통을 복구하는 문화혁명”에서 찾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2010년대에 쓴 글들을 모은 뒷부분으로 가면, 결의에 찬 문구는 어느덧 회한과 회의의 언어로 바뀐다. 다음 문장이 대표적이다. “내가 요즘 근본적으로 걱정하는 것은 선거 결과가 좋고 나쁜 문제가 아니라, 이 당의 사람들이 더는 진짜 좌파가 아니고 특히 없는 사람들의 대변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남한에 존재하는 ‘진보정치’ 또는 ‘좌파’가 19세기 유럽의 사회민주당이나 현재의 브라질 노동자당 만큼이라도 가난한 이들을 보호해 주거나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세력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 사이에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그 10년 동안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하고 노회찬, 심상정 같은 스타 정치인을 배출하기까지 했는데, 이재영은 왜 진보정당운동이 진보하기는커녕 퇴보했다는 평가를 내렸는가?
이재영의 책에 실린 글들은 하나같이 그 원인을 냉정하고 치열하게 진단하려는 시도다. 따라서 이 짧은 지면에 그 논의를 온전히 소개하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전성기였던 것으로 잘못 기억되는 2000년대 중반에 이미 이재영이 남긴 지적만큼은 반드시 되새겨야 한다. “한국 또는 민주노동당에서 개량이나 수정의 위험성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서구적 사민주의에서 도입되는 것이 아니라, 토착 자유주의 세력과의 근친성 그리고 그에 대한 종속성으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자유주의 정당에 의존하는 진보정치의 나약하고 나태한 모습은 결코 2010년대에 툭 튀어나온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은 이런 자기 한계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거대 자유주의 정당에 의존하던 관성 탓에 문재인 정부의 실패와 더불어 동반 추락했음에도 과연 이 체질이 극복됐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리고 이 문제는 분명 “없는 사람들의 대변자”나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세력”이 되지 못하는 현실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이재영 유고집을 완독해도 이런 교착 상태를 돌파할 출구를 찾기는 쉽지 않다. 하긴 남은 우리를 위한 답을 고인에게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재영이 마지막 글에 새겨놓은 당부만은 더없이 선명하다. “독립적 정치 세력임을 흔들림 없이 천명하고, 작은 영지나마 소중히 가꾸어 나가는 것.” 떠난 이들이 남긴 이 뜻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것보다 더 진지하고 절절한 애도와 추모는 아마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