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기점을 출발한 8146번 버스 첫차 내부. 신설된 8146번은 146번과 같은 노선을 오가지만 15분 더 이른 새벽 3시50분에 첫차가 출발한다. 손지민 기자
[기고] 김동수 | 기록노동자·<유령들: 어느 대학 청소노동자 이야기> 저자
한덕수 국무총리가 ‘새해 첫 출근 하는 시민들을 격려하겠다’며 지난 2일 새벽 4시5분 서울 상계동을 출발해 강남으로 향하는 146번 버스 첫차를 탔다. 버스에서 한 청소노동자는 한 총리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고 한다. “버스 첫차 시간을 10~15분만 당겨주셔도 한결 낫겠습니다.” 첫차 시간을 앞당기는 일은 노동자 증원이나 버스 증차 등과 연계돼 있기에 무리한 요청일 수 있었지만, 2주 뒤인 16일부터 실제로 첫차 운행시간이 당겨졌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시민들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는 행보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당겨진 첫차 시간만큼 늘어날 무급노동이라는 불편한 현실이 있다.
지난해
7월18일치 <한겨레> 기사에서 고려대 청소노동자 서재순씨는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이 오기 전에 청소를 어느 정도 끝내놓으려면 (정식 출근시간보다) 더 일찍 출근해야 한다. 새벽 4시30분에 출근하는 사람도 있다.” 고려대 청소노동자들의 근로계약상 근무시간(휴게시간 2시간 포함)은 새벽 6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2011년 <주간경향> 기사를 보면, 또 다른 고려대 청소노동자 이길자씨도 첫 출근을 했던 2003년부터 매일 첫차를 타고 정식 출근시간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해 일을 시작했다. 고려대뿐이 아니다. 연세대 김현옥씨도, 광운대 변선영씨도 정식 출근시간보다 더 일찍 출근한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일터가 어디건 청소노동자들의 이른 출근, 즉 추가 무급노동은 20년 이상 오래된 관행이란 얘기다. 문제는 일찍 출근한 만큼 무급노동을 한다는 점이다.
이는 청소노동자들이 근로계약에 기재된 근무시간에 출근해 직원(학생)들 출근(등교) 전에 아침 청소를 마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계약서대로라면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이 아니라, 근무시간 안에만 청소를 마치면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럴 수 없다. 사람이 없을 때 해야 빠르고 편하게 청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있을 때 청소를 하면, 서로 일을 방해하며 불편만 일으키는 꼴이 된다. 직원 중 일부는 자신의 업무시간에 청소가 이뤄지면 불만(컴플레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정식 출근시간을 앞당기는 게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용역업체들로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일과 시간에 어지럽히거나 더럽힌 것도 수시로 치우거나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소노동자가 오래 근무할수록 직원(학생)들이 청소 서비스를 받는 시간도 늘어나고, 그 시간이
길면 길수록 당연히 청소업체가 용역계약을 따낼 확률도 높아진다. 하지만 인건비 탓에 무작정 근로시간을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정식 출근시간을 앞당기면 청소노동자의 낮 근무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앞당겨지지 않은 정식 출근시간은 청소노동자의 ‘고강도 압축노동’으로 이어지지만 불법은 아니다. 노동법 어디에도 노동 강도와 관련해 합법과 불법을 명확하게 나눈 기준은 없기 때문이다. 단, 산재가 발생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2021년 서울대 청소노동자 산재 사망 사건이 대표적이다. 근로복지공단은 고인이 그동안 맡아왔던 업무들이 “육체적 강도가 높은 노동이었다”고 판정했지만, 그 전까지 단 한번도 법적 제재를 받은 바 없었다. 그래서 ‘정상적 업무’로 여겨졌던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일은 그가 일터에서 사망한 소식이 전해진 뒤 하루아침에 ‘시정해야 할 일’로 여론화됐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노동 강도의 불법성 여부는 법이 아니라 노동자가 죽거나 다쳐야 증명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 버스 첫차 시간의 변경으로 15분 일찍 출근하게 된 청소노동자 정남희씨는 <한겨레>에 이렇게 말했다. “일은 새벽 6시에 시작하지. 근데 그때 나가면 사무실 사람들 출근하기 전에 절대 일을 못 끝내.”
제시간에 마칠 수 없는 일을 무리하게 끝내려 할 때 산재는 일어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아침 시간대에 유독 짧게 설정된 청소노동자들의 유급 노동시간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장시간 걸릴 일을 단시간에 끝내도록 강제하는 계약을 처벌할 길이 없는 탓일까? 아직 산재가 발생하지 않았으니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걸까? 여하튼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 청소노동자는 ‘자발적’으로 출근시간을 앞당긴다. 장시간 걸릴 수밖에 없는 일을 제시간에 마치기 위해서다. 앞당겨진 첫차를 타는 청소노동자들이 ‘좋아서 난리가 난’ 것도, 딱 그만큼 산재 발생 가능성이 줄어서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