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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윤석열식 콩글리시 [유레카]

등록 2023-01-31 16:03수정 2023-02-01 15:23

1993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김영삼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청와대 사진사였던 홍성규씨가 지난해 7월 한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에피소드를 전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영어가 좀 서투셨다. 그런데 클린턴 대통령에게 인사를 해야지 않나. 비서가 ‘How are you?’(하우 아 유) 하면 됩니다, 했는데 ‘Who are you?’(후 아 유)라고 하셨다. 이에 클린턴 대통령은 재치 있게 ‘나 힐러리 남편이다’라고 해 웃으며 마무리됐다.”

이 이야기엔 그럴듯한 뒷이야기도 전해진다. 김 전 대통령이 “사람을 만나 반가움을 표시할 때는 ‘이게 누꼬’(이게 누구야?)라고 하지 않나, 그러니 ‘후 아 유’가 맞지”라고 농담했다는 것이다.

소통이 왜곡돼 사건으로 비화하지만 않는다면, 언어 사용의 오류에도 관용은 필요하다. <한자의 탄생>을 쓴 대만 작가 탕누어는 유학자들이 그토록 중히 여기는 덕(德) 자가 애초 ‘커다란 눈 하나가 사거리 한가운데서 사방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이라며 “문자는 줄곧 잘못 이해하기와 잘못 읽기, 그리고 잘못 쓰기를 거듭하면서 구불구불 발전해왔다”고 했다. 어쩌면 훗날 ‘이래라저래라’ 대신 ‘일해라절해라’가, ‘일취월장’ 대신 ‘일치얼짱’이 바른말로 쓰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식으로 잘못 발음하거나 비문법적으로 사용하는 영어를 속되게 이르는 말’을 콩글리시(표준국어대사전)라고 한다. 최근 사람들 입길에 오르내리는 게 ‘체인지 싱킹’(change thinking)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월25일 국무회의에서 “조급하게 미시적인 것들을 만들거나 바꾸기보다는 ‘체인지 싱킹’, 생각 바꾸기가 시작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도 “올해부터는 ‘체인지 싱킹’, 즉 금융시장의 선진화를 위해 직접금융시장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영어 문법에 맞냐는 논란이 있지만, 무슨 뜻인지는 알아들을 수 있다. 문제는 이해하기 어려운 영어 표현을 자꾸 쓰는 것이다. ‘거번먼트 인게이지먼트가 레귤레이션이다’라거나 ‘2023년은 어그레시브하게 뛰자’는 말이 그런 사례다. “국립추모공원이라 하면 멋이 없고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라고 하면 멋있다”고 한 말을 돌아보면, 은연중에 열등감을 드러낸 것은 아닌가 싶어 마음이 불편해진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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